커뮤니티

창작 게시판

레온 슈나이더는 사실 기대했었다 작성일2025.03.16 조회421

작성자애쿼머린

※ <순교자의 언덕> 약간 이전의 이야기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폼이 남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인 셔츠의 소매 끝자락이었다. 그리고 그 소매 안에는 자신의 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작달막한 손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주먹을 쥐어야겠다고 생각하자 쥐어지고, 다시 주먹을 펴야겠다고 생각하자 펴지는 그 작은 손을 보면서, 이 과정을 세 차례나 반복한 끝에 레온은 이것이 자신의 손이라는 것을 겨우 인지할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어렸을 적이 분명하게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려 5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바로 어제 있었다는 듯이 생경한 기억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레온에게 있어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무작위로 생각하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자신의 어렸을 때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아들인 볼프강 슈나이더의 어렸을 때의 모습이 더욱 잘 떠올랐다. 물론 자신의 아들은 이미 성인이 된 지 꽤 오래되었기에 그마저도 생경한 기억에 결코 부합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레온에게 볼프강의 어린 시절 모습은 아주 똑똑히 잘 각인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볼프강의 탄생과 성장은, 레온에게 있어서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볼프강을 떠올리고 나니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볼프강을 못 본 지 꽤 되었던 거 같았다. 갑자기 의식의 흐름이 그쪽 방향으로 빠지니 조금 기분이 울적해졌다.

   

 지금 레온은 힐데가르트 기관의 어느 지하 연구소에 있는 방에 홀로 있었다. 독방에 감금되어야 하는 이력을 저지른 건 아니었고, 이것도 다 연구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얼마 전 바알의 구(舊) 도서관으로 추측되는 건물에서 가지고 온 ‘어느 물건’에 대한 연구였다. 

   

 그 물건은 축음기였다. 본래의 축음기라고 함은, 올려둔 레코드판을 재생시키기 위한 것이겠지만 이 축음기는 그렇지 않았다. 레코드판을 대신해 ‘어떤 것’을 매개체로 사용해 특정한 미래를 관측하게 시켜주는 물건이었다. 사족을 조금 붙여보자면, 그 미래를 관측하게 해준다는 지점에서 축음기보다는 사실 영사기(映寫機)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는 게 더 적절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랬더라면 보자마자 바로 어떻게 활용을 할 수 있는지 시각적으로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축음기를 만든 ‘존재’가 영사기의 존재를 모르거나 아니면 그냥 단순히 축음기의 형태가 취향이었던 것인지, 이 미래 관측 기기는 아무튼 간에 축음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어쨌든 레온 슈나이더는 대단한 발견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점은 바로 드러났다. 앞서 축음기를 통해 미래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매개체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역사’였다. 인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 육체의 성장, 혹은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지식, 기억 등을 의미했다. 다행히 어떤 쪽의 역사를 바칠 것인지는 사전에 축음기를 사용하기 전에 조정이 가능하다. 만약 무작위로 자신의 어느 것을 바쳐야 한다고 하면 제아무리 미래를 관측할 수 있다는 달콤한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막상 두려움에 떨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축음기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한 개인의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건 이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분에 넘치는 고민이었다.

   

 -이거……. 손잡이가 엄청 뻑뻑한데요?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랬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래 관측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힐데가르트 기관에 있는 모든 연구원들이 와서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리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연구원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레온은 슬쩍 축음기 앞으로 다가가 아주 ‘가볍게’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렸다. 당연히 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연구원들의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운 와중에도 레온은 영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 이 축음기를 발견했을 때 들었던, 일명 ‘축음기의 사용설명서’를 설명해주는 듯한 그 목소리를 다시금 떠올리고 있었다.

   

 [……웰컴! 인간들의 언어로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게 맞을지 모르겠군.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발음할 수 없을 터이니 그저 ‘초보 각본가’ 정도로만 알아주면 좋겠군. 이 축음기를 처음으로 발견한 제군에게, 내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고 한다면 제군은 합격한 것이라고 하겠네. 선택을 받았다는 건 아니야. 제군의 강렬한 ‘열망’이, 이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게 한 거라는 소리일세. 그럼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겠네. 제군은 제군의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해, 이 손잡이를 계속 돌릴 수 있는 인간인가?]

   

 그 뒤로는 자질구레한 설명이 이어지기는 하였으나, 지금 이 축음기를 레온만이 돌릴 수 있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배경 설명은 되었다. 각본가의 말이 맞다고 한다면, 이 기관 내의 사람들 중에서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레온 혼자만이 이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다. 즉, 레온만이 한정되기는 하지만 똑똑히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을지도 모르지만, 레온은 이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을 때 무척 송구한 마음만 들었다.

   

 레온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자신만이 축음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열망’의 기원이 무엇인지. 자신은 특별해진 게 아니다. 아주 치사하게도, 편법을 쓴 것뿐이었다. 그리고 쉽게 얻은 – 물론 대가로 자신의 무언가가 깎아내리는 것이 별 거 아니라는 것은 아니었다 – 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법이다. 심지어 한계도 명확하다.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는 횟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런 거라고 한다면 좀 더 신중을 가해서 미래를 관측해야 하던 게 아니었을까? 우습게도 레온은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가 이렇게나 어려져버린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인류의 존속을 위한 관측을 하겠다고 했지만, 레온이 여러 번의 미래 관측을 통해 찾고자 했던 건 오로지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안위였기 때문이었을까?

   

 그에 대한 합당한 벌이었을까?

   

 이제 육체의 역사를 바칠 수는 없다. 이렇게나 어려진 것이라고 하면 육체의 역사를 한 번 더 바치면 어떻게 될 지는 진짜 알 수가 없었으니까.

   

 ‘……이제 더 바칠 것은 없나.’

   

 아니, 딱 하나 남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레온은 자신의 심장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갑작스러운 육체의 변화로 생긴 부작용 때문이 아니다.

   

 이건…… 자신의 양심의 가책이었다.

   

 레온은 아주 오래전에 병마로 죽은 자신의 아내의 이름을 읊조렸다.

   

 “라나.”

   

 그 이름을 아주 오랜만에 부른 것은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레온의 질문에 답해줄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이미 답을 내렸다.

   

 “당신이라면 이해해주겠지.”

   

 우리의 아들을, 끝까지 지켜달라고 했으니까. 당신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한 못난 남편이지만, 아들이 희생당하는 걸 그저 관전하는 못난 아버지까지는 더욱 될 수는 없으니까.

   

 레온은 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리기 전,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꺼풀 뒤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일찍 죽은 자신의 아내의 얼굴을 그려본다.

   

 이걸로 다짐은 섰다.

   

 레온은 축음기의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그 시각 즈음, 힐데가르트 기관의 연구원들은 놀라고 있었다. 바알의 도서관에서 가지고 온 축음기를 통해 미래 관측 실험을 마저 하겠다고 홀로 독방에 들어갔던 레온 슈나이더 교수가…….

   

 “……옷을 좀 구해다줄 수 있겠나?”

   

 무척이나 어려진 모습으로 문을 열면서, 아주 차분하게 옷을 구해달라고 요청한 탓이었다. 본래 레온이 입고 있던 옷은 너무도 커서 겨우 셔츠 하나만 몸에 걸쳤을 뿐인데도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이에 대해 연구원들은 안 좋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육체의 역사는 한 번 바칠 때마다 약 10년 치를 바친다고 교수가 설명했었다. 그런데 독방에 들어가기 전의 중장년 모습이 아닌, 약 10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그만큼의 많은 미래 관측을 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나 미래 관측을 많이 해야 했던 상황이 왔었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렇다는 건…… 레온의 지금 저 모습은 미래 관측을 도중에 중단하고서 나타난 상황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불안한 연구진들 사이에서 레온은 얌전히 소파에 앉아서 자신이 입을 옷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꼬마의 모습인데, 짓고 있는 표정은 무척이나 노련하여서 연구진들은 차마 누구 하나 먼저 레온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저 교수님……. 미래 관측은 실패한 건가요?”

   

 어떤 용감한 연구원이 레온에게 겨우 이런 질문을 하였다. 레온은 연구원을 힐끗 보더니 표정 변화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닐세.”

   

 레온의 허락이 떨어지자 연구원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연구진들을 무표정하게 보던 레온은 그 광경에 대해 지적하였다.

   

 “자네들.”

 “네, 네……?!”

 “아직 젊어서 그런 거겠지만, 그렇게 자신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겉으로 다 드러내서는 안 되네.”

 “…….”

 “물론 낙담하고만 있는 것보다는 좋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냉철함을 지켜주게.”

   

 그래야 솟아날 길이 보인다면, 그 목적지를 향해 올곧게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노년에 접어든 – 물론 이제 겉모습은 10살 정도였지만 – 교수의 충고는 평소와 달리 제법 날카로웠다.

   

 마치 이제 더 이상 미래 관측을 할 수 없을 것처럼. 이런 눈치를 몇몇 연구원들은 챘는지, 곧장 아까 전보다는 조금 더 숙연해졌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 바로잡혔으니, 이를 위한 준비를 해두면 되었다. 레온은 자신이 관측한 것을 토대로 인류에게 희망적인 앞날을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목록을 연구원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향했다.

   

 힐데가르트 기관원들이 준비해준 옷으로 다 갈아입은 레온은 문득 탈의실에 비치된 거울을 보게 되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전신 모습을 보는 건, 갑자기 어려진 이후로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대충 계산을 했었던 대로 지금 자신의 모습은 약 10살 정도의 모습이었다. 사실 레온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장 크게 놀랐던 부분은 바로.

   

 “……주니어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거 같군.”

   

 어려진 자신이 바로 자신의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과 많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부분이었다.

   

 사실은 볼프강이 레온을 많이 닮은 것일 테지만, 레온은 그런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하고 그저 거울 속에 어렸을 때의 주니어가 서 있는 것에 감회가 새로워, 한참동안이나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계획에 따르면 곧 주니어와 만나게 될 텐데.”

   

 볼프강이 바로 어려진 자신을 알아보면 어쩌나 싶었다.

   

 알아볼 수밖에 없겠지.

   

 이렇게나 자신과 어렸을 때랑 쏙 닮은 아이가 떡 하니 있으면 의심이 가는 수밖에. 레온 슈나이더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볼프강과 재회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자신에게 생긴 ‘이변’을 볼프강이 눈치 채지 못하게…… 아니 눈치를 채면 안 되었으니까.

   

 “……그에 대한 자료는 힐다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볼프강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아내였던 자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는 일이었다.

 


댓글0

0/200

창작 게시판
BEST
바이올렛[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