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딘가 실험실로 보이는 장소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녀와 그런 소녀의 반응을 관찰하며 자료로 정리하는 사람들. “흠… 투약 양을 너무 늘렸나?” “그래도 지난번 핑키보다는 꽤 괜찮은 결과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도사의 자질도 없는 핑키한테서 이런 결과를 얻게 될 줄이야.” 소녀를 입양한 부부는 시설에서 소녀를 빼낸 뒤 이곳으로 끌고 와 소녀를 대상으로 여러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 “흠… 이 정도로 버틸 줄이야.” “이러면 마지막 실험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확실히. 현 단계까지 버틴 건 저급이긴 하지만 도사의 자질이 있던 것들이었으니.” “어쩌면 도사의 자질이 없는 104호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도 있겠어.” 극심한 격통의 격류 속, 흐릿하게 이어지는 의식의 사이로 보이는 하얀 가운의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에서 뭔가 기묘한 기대감이 맴돌았지만, 그 시선은 그러지 않았다. 소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마치 물건의 품질을 판가름하는 것 같은 자신에게 필요가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하려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런 차가운 시선을 마지막으로 고문이나 다름없는 실험으로 한계에 다다른 소녀의 의식이 끊겼다. “…….” 실험 종료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실험실에서 정신을 잃은 소녀가 눈을 떠보니 자신이 지내는 방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오늘로 벌써 몇 년이 지난 걸까.’ 이곳에 오게 된 지 벌써 십 년…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성장해가는 자신과 방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하는 것 뿐이었다. 아직 어린 꼬마 소녀였던 아이가 어느덧 어엿한 소녀가 될 때까지 걸린 십여 년의 시간. 그 시간 동안 소녀의 또래 아이들이 겪는 즐거운 일이나 행복한 일을… 소녀는 겪어보지 못했다. 이곳에 온 그날부터 소녀는 단 한번도 즐겁거나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정신을 잃고 들기를 반복하는 그저 괴로울 뿐인 삶. ‘……일기장.’ 소녀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고통과 자신을 사람이 아닌 물건처럼 보는 시선에 두려워 이불을 뒤집어 쓴채로 벌벌 떨며 눈물 흘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실험이 고통스러워 저항하였지만… 쫙-!! 그때마다 돌아오는 폭행과 폭언. 그리고 더 심한 강도의 실험.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제공되던 식사조차 완전히 끊겨 3주 가까이 굶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내 방 안에 넣어준 공책과 펜. 그걸 본 뒤로 시간이 나는 대로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또 기억하며 공책이 빼곡하게 채워질 때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늘 방 안에 놓이던 새로운 공책. 그리고 책이 쌓일수록 더 많아진 소녀의 이야기. 책들의 안에는 글만이 아닌 소녀가 그린 그림 또한 들어가 있었고,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소녀의 어린 시절… 지금은 그저 기억 속 추억에만 존재하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 편 페이지에도 소녀는 팬을 굴렸다. 소녀가 팬을 움직일 때마다 새하얗던 공책에 숨을 불어넣는 것처럼 소녀가 보았던 그 순간의 모습이 그 안에 생생히 재연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수록 점점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과거의 나날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 ‘엄마… 아빠….’ 아무리 입술을 들썩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 이제는 부르는 것마저 할 수 없게 된 소녀는 그저 눈물로 부를 수 없는 부모에 대한 그림움을 표현한다. 그림 속 두 남녀는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두 사람의 사이… 무언가를 수 없이 지우고 다시 그린 듯한 흔적. “………………….” ‘보고 싶어요….’ 언제나 늘 생각나고 그리운 두 사람. 고문이나 다름없는 실험의 나날에도 괴롭고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부모님의 얼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왜 자신을 살린 거냐, 어째서 나 같은 걸 살린 거냐며 소리치고 원망하고 싶었다. 그때 자신도 같이 죽었다면 이렇게 쓸쓸하고 괴롭지는 않았을 거라고 외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나 같은 딸을 구하기 위해 그 고통을 견딘 사실이… 혹시 딸이 고통스러워하는 자신들의 얼굴을 보고 혹여나 눈물 흘리지 않을까 어렵게 미소 짓고 있던 그 모습을 기억하기에 원망보다 미안함이 먼저 앞섰다. “실험체 104호.” 한참을 부모님 생각에 눈물 흘리던 순간. 덜컹하면서 열리는 철문과 함께 들려오는 무기질적인 목소리. “이번이 너에게 하는 마지막 실험이다. 따라오도록.” “…………………………?” ‘마, 마지막… 이요…?’ 한껏 놀란 표정으로 입을 뻐금거렸지만, 입술 모양을 읽는 것도 아닌 연구원이 소녀의 말을 알리가 없었다. 연구원이 무심하게 건네던 마지막이라는 말.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소녀에게 얼마나 구원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실험실로 향하는 길.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이 길을 걷는 게 편했던 적이 없었다. “아, 왔군.” 연구실의 안. 한 번씩 본적이 있는 모든 연구원. 그들은 문이 열리기 직전까지 토론한 것 같다. “축하한다. 104호. 너는 우리가 준비한 모든 실험을 훌륭하게 버텨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잘 버틸 줄은 우리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실험이 끝난 뒤엔 널 자류롭게 해주마.” 마지막에 들려온 소리에 그녀가 미약한 반응을 보였다. 오랜 시간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오랜 옛적에 박탈당한 권리를 준다는 말에 그녀는 마지막 실험이라는 말만으로도 최고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큰 구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 한 연구원이 피식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그럼 부디 잘 버텨서 자유를 찾길 바라마.” 그 말을 끝으로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때까지 받아 온 실험에서 겪은 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의 엄청난 격통. 상상을 초월하는 격통 속에서 정신을 잃고 깨기를 반복하면서 차라리 죽여달라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죽어가는 짐승의 단말마와 같은 소리뿐이었고, 그마저도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00카득-! 입에 물린 재갈을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재갈이 일부 부서졌고, 이빨도 같이 부러졌다. 하지만 자신이 겪는 격통 때문에 이빨이 부러지는 통증같은 건 전혀 느낄 수도 없었고, 점점 더 그 강도를 더해가는 통증에 더욱더 거세게 몸부림을 쳤다. 그들은 그녀의 반응에도 무신경하게 실험을 강행하였다. “출력을 높인다.” “이쪽은 약물 투여량을 줄여라.” “이식률은 확인되었나?” “적합률 상승.” “좋아, 아주 좋아. 모든 게 전부 기대 이상이야.” 중간중간 정신이 들 때마다 들려오는 의미 모를 말과 희열에 가득 찬 목소리. 너무 비명을 지른 탓에 목은 완전히 나갔고, 목에서 밀려 나오는 피와 부서진 이빨 파편만을 뱉어내는 소녀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지금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오직 한 가지만을 바라였다. ‘아……. 그냥… 이대로 편해지고 싶어….’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벗어나서…. 그만…. ……죽고 싶어. “시, 실험체의 생체 반응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뭐?! 약의 투여량을 늘려!! 어서!!” “어떻게 찾은 성공 가능 개체인데! 무리해서라도 반드시 살려네!!” “저, 적합률도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출력, 어서 출력을 더 올려! 어떻게 해서든 적합률만은 유지해야 한다!” “무, 무리입니다. 약과 출력 모두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습니다!” “젠장!? 또 실패인 거야!!” 점차 끊어져 가는 의식의 한 줄기 속으로 들려오는 격노한 듯한 그들의 목소리. 무언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기라도 한 건지 다급하고 짜증이 가득한 그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소녀의 눈은 천천히 감겼다. “이번에는 성공할 줄 알았는데….” “쯧- 역시 이 프로젝트는 실현 불가능인 건가.” “이 프로젝트는 이만 접자고.” “다른 녀석들이 하던 황충의 왕 복원에 붙는 편이 더 낳겠어.” “그래, 그게 더 좋겠어. 더 이상의 진행은 시간 낭비야.” “후- 그래도 마지막 실험체는 어떻게 성공할 것 같아서 남은 걸 전부 사용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데이터들을 얻었어.” 소녀의 생체 반응이 정지되어 실험의 완전 실패를 확인한 연구진들은 결국 이 실험의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 실험을 완전 폐기하기로 했고, 마지막 실험체인 그녀를 이전 실패작들처럼 부산 인근 해안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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