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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소녀. 갯바위 마을(13). 작성일2025.06.08 조회174

작성자swado

 
수 없는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희망은, 구원이 아닌 치료할 수 없는 극심한 병이다.
 
희망을 품고 내일 바라면, 그 희망이 부서질 때의 절망은 생각도 하기도 싫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럴 바에는 더 이상 희망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이 이상 괴로워지고 싶지 않아.
 
……예전에, 한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가연이 옛날이야기라며 한번 들어달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 아이는 언제나 끝없는 고통과 억압 속에서도 언젠가는 이 모든 게 끝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왔었죠. 하지만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강하지는 않나 봐요.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희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가슴을 후벼파는 예리한 칼이 되었고, 그 고통에 결국 그 아이는 버팀목이었던 희망을 놓아버리고 말았어요.
 
희망을 포기하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희망.
 
지금의 희망 씨도 그때의 아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네요. 하지만, 희망 씨와 그 소녀는 달라요.”
잘못 보신 거예요. 저는 이미…… 이야기 속 아이처럼 모든 걸 포기했어요.”
아니요. 정말 모든 걸 포기하셨다고 하기에는희망 씨의 곁에는 소중한 게 너무 많아요.”
……?”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같이 처연하게 비치는 소녀의 눈빛에 희망은 순간 숨을 삼키고 말았다.
 
정말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은 곁에 소중한 게 있으면괜히 화를 내거나,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을 부리는 둥어떻게든 곁에 두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게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주기도 싫고 더 이상 연관되기도 싫어 자기 할 말밖에 안 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희망 씨는아라나 다른 애들에게 안 그러시잖아요.”
 
처연한 눈빛을 가리려고 일부러 눈을 감아 미소 지어 보이지만, 그 미소로도 가려지지 않는 처연함에 뱉으려던 말은 안으로 들어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희망 씨는 이곳에 있는 많은 아이들의 오빠이자 아빠예요. 자신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한테 희망을 포기했다고 말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포기했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곁엔 당신이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이 있어요. 물론 저도 그중 한 명이고요.”
왜 그렇게까지 제가 살아가길 바라시는 거죠. 당신은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 확실히 전 희망 씨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보고 들으며 알게 된 희망 씨는 항상 자기보다 동생들을 걱정하고, 언제나 동생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씨 따뜻한 착하고 다정한 오빠예요.”
 
티 하나 없이 맑은 따뜻한 봄날의 햇살과 같은 미소.
 
자신을 동생들을 걱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씨 따뜻한 오빠라는 말이 딱딱하게 굳어있던 소년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이 몸을 치료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거예요.”
내가…… 빌려줄 수 있어요.”
 
조용히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하가 조금 생각을 하다가 말을 꺼냈고.
 
오래오래 살아서, 천천히 갚아요. 나도 오래오래 살아서, 천천히 받아먹을 테니까.”
그래요, 아픈 거 다 낫고 오래오래 사세요. 그리고 저희 빵집에도 아이들과 함께 놀러 오시고요.”
…… , 저만 뭐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돈을 빌려준다는 은하와 아이들과 함께 놀러 오라며 제안하는 루시.
 
그리고 그런 두 사람처럼 아이들을 위해 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우는 소리를 내는 가연의 말에 은하와 루시가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주었다.
 
괜찮아요. 언니는 애들을 봐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으니까.”
맞아요. 가연 언니한테는 이상하게 엄마한테 했던 것처럼 어리광 부리고 싶어진다고요.”
으으……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기쁘긴 한데. 한편으론 기뻐하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군요, 당신들은.”
 
뭔가 복잡한 심경이라 말하는 가연과 그런 가연과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표정이 풀린 루시와 은하의 모습에 화면 너머의 희망도 걱정과 근심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천천히 풀리며 이전보다 더 밝아졌다.
 
……잠시만요, 통신이 들어왔네요.”
 
이야기를 나누려던 찰나, 갑자기 들어온 연락.
 
, 여보세요? 내 말 들려?”
 
밖으로 의료 관계자를 데리러 간 반금련의 연락이었다.
 
지금 섬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말이야. 그쪽으로 가는 길은 막혀서, 다른 쪽 루트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이쪽 루트는 섬에 있는 다른 위상능력자들에게 뚫어달라고 해둔 참이야. 근데 그러면, 궁지에 몰린 차원종들이 그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어. 그러니까 미리 나가서 차원종을 좀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돌아오자마자 또 사람을 부려 먹으시네
 
무보수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축 처진 분위기의 은하와-
 
다른 위상능력자들이라면…… 혹시?”
혹시 그 다른 위상능력자분들 미래라는 분과 김철수라는 분인가요?”
? 맞아. 알고 있었어? 그 두 사람은 중개인의 심부름꾼인데. , 그러고 보니 전에 꼬맹이가 김철수라는 사람을 아냐고 물었었지?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
 
역시.
 
이 섬에 여기에 있는 세 사람을 제외하면 위상능력자는 단 세 명.
한 명은 이 섬의 관리자라는 사람.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이 바로 아까 말한 미래와 김철수.
 
그중 김철수라는 분은 루시한테 있어선 원수나 다름이 없기에
 
그 남자, 조심하는 게 좋아요. 위험한 사람이에요.”
그 정도는 이미 눈치챘거든, 걱정할 거 없어. 경계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던데.’
 
솔직히 처음 봤을 땐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뭔가 속이 텅 비어있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지금 생각해보니, 텅 비어있다기보다는 위험한 무언가를 없애고 싶어서 그것과 관련된 모든 걸 비우고, 그렇게 비워진 곳에 조금씩 따뜻한 온기가 담기고 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데려오겠다는 사람 데려왔으니까. 길을 막는 차원종들이나 좀 부탁해.”
물론이죠, 얼마든지 해 드릴게요.”
, 맡겨주세요. 친절한 반금련 씨.”
 
……? 방금 친절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 친절한 반금련 씨?”
,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그랬지?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화낸다?”
…… 친절한 반금련 씨래.”
, 은하 씨그런 걸로 웃으시면 안 돼요. 상대한테 실례일 수도 있는데.”
아니- 안 웃으려고 해도 너무 웃겨서 참기가
 
어지간히 웃겼는지 은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런 은하의 반응에 열이 오른 건지-
 
! 비웃지 말고 얼른 차원종이나 처리해! 알았어? 통신 끊는다!”
 
바로 통신을 끊어버리는 반금련 씨를 보며 루시가 한 말이 여간 부끄러웠나 보다.
 
생각보다부끄러움이 많으신 분이었나 보네요.”
 
하긴나도 루시가 처음에 이름 모를 방랑자라느니엄마 같다느니그랬을 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데.
 
내심 반금련의 심정이 이해가 간 가연이었다.
 
그럼 이만 가볼까요. 마침 해야 할 일도 생겼으니 빨리 처리하자고요.”
, 그럼- 루시야.”
 
반금련 씨가 말한 대로 차원종을 해결하러 셋이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루시가 움직이지 않아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루시를 보자.
 
김철수그 사람 왜 나쁜 사람이면서 이곳 사람들을 도와주는 걸까요……?”
글쎄, 어쩌면 그 사람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게 아닐까.”
-!! , 가연 언니.”
 
두 사람과 떨어져 혼자 중얼거리던 루시에 곁에 조용히 다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루시의 말에 대답하였고,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토끼처럼 살짝 뛰어오른 루시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쿡쿡 웃는 가연.
 
, 언제 오셨어요. 아무 말도 없이 다가오셔서 얼마 놀랐는데요.”
, 그래. ……미안.”
 
루시의 말에 또다시 위축되는 가연을 보고 루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는 순간.
 
저기요. 갈 거예요, 말 거에요. 같이 안 갈 거면 나 혼자 가고.”
, 아니에요. 같이 가요. , 가연 언니도요.”
, 어어……
 
순식간에 루시에게 이끌려서 은하와 함께 차원종이 나타날 장소로 이동하였다.
 
*
 
차원종의 처리가 끝나 마을로 돌아오자.
 
알겠지? 지금 여기에 캐롤리엘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말이야.”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
 
하지만 뭔가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의사나뭐 그런 비슷한 걸 하는 사람인 모양이야. 모두의 몸 상태를 보고, 몸이 안 좋은 사람은 진찰해주겠다니까. 네가 애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와. 희망 오빠도 데려오고.”
. 알았어, 중개인 언니!”
 
기쁜 듯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잘 가라며 손을 흔드는 아라.
 
그리고 그걸 그저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던 은하와 가연과는 달리-
 
저기, 잠시만요. 당신도 이 섬의 사람이죠?”
 
처음 보는 저 소녀에게 뭔가 물어봐야만 할 것이 있었는지 그만 통신을 끊으려는 소녀를 붙잡는 루시.
 
? 처음 보는 아이네? 뭐야? 무슨 일이야?”
그쪽 심부름꾼 중에 김철수라는 사람이 있나요?”
, 그게 왜?”
그 사람이 위험한 종교단체 관계자라는 거혹시 알고 계시나요?”
 
루시는 자신을 죽이고 본체를 탈취한 자.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곳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그 남자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었다.
 
그가 정말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본체를 탈취해갔던 악인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한 명의 아이를 구하려던한 사람의 선인인지.
 
그런 거 몰라, 그 아저씨는 과거의 기억이 없으니까.”
? 과거의 기억이 없다고요?”
그래, 머리를 다치고 죽어가던 걸 내가 빗속에서 주웠어.”
 
생각지도 못한 과거에 놀라기도 했지만, 어쩌면 속이 비었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기억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그렇게 심부름꾼이 되어서 섬의 사람들을 구해줬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든 간에, 나는 지금의 심부름꾼인 김철수 아저씨밖에 몰라.”
그러니까 우리 심부름꾼을 험담하려는 거라면 그만둬. 아저씨만큼 든든한 사람도 몇 없으니까.”
 
그 말에 순간 머리를 망치로 세계 후려 맞은 듯한 충격에 휘청거리는 루시.
 
그 사람이기억상실이라니……
이야기는 끝이야? 그럼 이만 끊을게. 이쪽은 아이들 진찰 준비를 서둘러야 해서 말이야.”
 
<>
 
믿을 수가 없네요. 믿을 수가 없지만……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끊겼고. 루시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다시 만난 당시의 그는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요?”
, 그게김철수라는 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아라를 도와주었던 그 사람이군요.”
 
그렇게 루시가 고뇌하고 있을 때 다시 통신이 연결된 비둘기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목소리. 그리고 화면 너머로 보이는 루시의 모습에 의문을 표하는 희망에게 루시의 뒤에 있던 가연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 설명에 아는 사람인지 목소리가 한결 밝아진 희망.
 
그분사고로 이 섬에서 눈을 띄기 전까지의 모든 기억을 잃고 심부름꾼으로 살고 있다고 해요.”
 
가연의 말에 희망은 정신을 차린 루시를 향해-
 
기억상실…… 루시 양은 그 말을 믿으세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남자는…… 저를 잊었겠군요. 저를 공격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일도……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건…… 비겁해요, 너무 비겁하다고요……!”
루시야……
 
보기 드문 루시의 격한 반응에 가연이 루시의 양어깨를 살며시 잡자.
 
……죄송해요. 조금, 흥분한 것 같네요.”
 
가연의 손길에 루시는 예서 침착함을 유지한 채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희망 씨랑 아라 언니.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치료받으러 가야죠.”
 
이상하리만치 금방 기운을 차리는 게 억지로 기운을 내려는 것 같았다.
 
아라 언니, 희망 씨와 아이들을 의사에게 데리고 가주세요. 제가 길을 뚫겠어요.”
! 잘 부탁해, 루시야! 그리고 루시. 무슨 일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너무 화내지 마. 화내지 말라고, 내가 꼬옥 안아줄게!”
 
티 한점 없는 맑은 미소를 띤 아라가 루시를 인형 안듯 꼭 껴안자.
 
, 아라 언니……?”
헤헷, 기분 좋다. 이렇게 서로 볼을 맞대고 있는 거.”
그러네요, 사람의 온기는 언제 느껴도 좋아요.”
 
처음엔 당황하던 루시도 아라의 온기와 미소에 녹아들 듯 억지로 지은 것 같은 표정이 사라지며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마워요, 믿음직한 아라 언니. 언니는 정말,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에요.”
 
…….
 
안 가봐도 돼요?”
 
한결 누그러든 채로 아라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루시를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가연의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온 은하가 옆에 안 가봐도 되겠냐 묻자.
 
제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 , 그럼 빨리 가죠. 늦으면 그 친절하신 반금련 씨가 못 오실 수도 있으니.”
은하 씨그거 반금련 씨 앞에서 하시면 안 돼요.”
생각은 해볼게요.”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은하는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가리려 머플러를 살짝 올렸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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