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음을 고지드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만이 보일 뿐. 어둠 속을 한참을 헤멨다.
딛는 감각도, 그렇다고 떠있는 감각도 들지 않아 걷는 것초차 힘들었다.
걷고 또 걷고 나서야 그제야 스스로 눈을 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어떻게 눈을 뜨는 거였지조차 흐릿했다.
한참을 몸부림치고서야 나는 간신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고... 기묘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은 구름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맑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진 세계였다. 발 밑으로 펼쳐진 물은 얼마나 투명한지 하늘이 그대로 비쳐져 하늘 속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과 맑은 물향기를 품은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데, 그 속에 함께 섞여 날아온 빗방울은 청량한 시원함을 남기며 피부에 적셔들어갔다. 그와 반대로....
다른쪽의 세계는 지평선 너머까지 잿빛의 모래만이 가득한 사막이였다. 구름이 낀 것도 아닌데 잿빛으로 물들은 하늘... 건조한 바람 속에 흩날리는 검붉은 먼지와 코끝을 스치는 타는 냄새...모래인줄만 알고 계속 디디고 있던 모든 것이, 잿가루였다. 잿빛의 재와 먼지로 이루어진 황무지는 쓸쓸하다못해 다가가는 것조차 거부감이 드는 세계였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공존할 수 조차 없는 두 세계가, 그것도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 거지? 나는 어쩌다 이곳에 발을 디딘 건가? 아니, 그전에..... 나는, 누구였지? 떠오르는 모든 기억이 희미했다.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기도, 맞지 않는 퍼즐처럼 아귀가 맞지 않기도, 깨져 버린 유리 조각처럼 산산 조각나 뭐가 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안녕?" 누군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부드러운 저녁놀처럼 부드러운 주황빛의 머리칼과 수의(壽衣)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서, 부서질 것만 같은 깃대에 누더기같은 잿빛의 깃발을 나부끼고 있는 남자가... 두 세계가 맞닿는 중심에 서 있었다. "...!" 나는 한걸음 뒷걸음질쳤다. 무의식적이였지만, 스스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본능이였다. 부드러워 보이고, 어딘가 신성하기 까지 보였음에도.... 그 너머로 깊이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불길함과 끔찍함....
저것은 재앙이다. 파멸이며, 멸망이다.
도망쳐야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저것과 마주한 순간부터 걷는 방법은 물론이고, 숨을 쉬는 방법조차 망각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 존재는 내가 뭘하고 있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제대로 마주하는 건 이 시간에서는... 처음인가? 너를, 뭐라고 불러줘야 할까? 파리의 차녀? 의사 양반? 데르마토비아? 아니면.... 호프만?" 그가 이름을 부른 순간, 조각나고 흐릿했던 기억이 모두 선명하게 떠오르고 맞춰졌다. 그래. 그게 나의 이름이다. 인류의 진보를 위해 연구하고 봉사해온 나의 이름은....! "나는... 메...메리... 셀리.... 호프만이....다....!" "....그래?" "여긴..... 어디....지? 날 어디로.... 끌고 온 거....냐?" 힘겹게 숨을 삼키며 스스로의 이름을 불른 메리가 이 기묘한 공간에 대해 묻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글쎄? 여기를 처음 발 디뎠던 사람도 결국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다 파악하지는 못 했고, 알만한 이들은 대답을 할 생각이 없거든. 그래서 그는.... 이곳을 여러 이름으로 불렀어." "회귀의 틈새, 멸망해가는 세계의 이면, 잊혀지고 버려진 차원의 일부, 황천의 숨겨진 길목.... 아. 진짜 황천은 따로 있으니 그거는 아니였지만."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시간을 헤메고서 이 공간이 지닌 기능의 일부를 찾아내곤 이렇게 불렀다지." "영혼을 데려와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세계라 영계(靈界), 혹은..... 마음을 비춰보는 세계라 해서 영계(映界)라고." "그런 말장난 같은 대답따윌 듣자고 물은 게 아니야?! 날 당장 이곳에서 내보내! 나는 아직 인류의 의학를 진보시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단 말이야!!" "...그 모습으로?" "뭐....?" 남자의 말에 메리는 자신의 눈과 자잘한 파문이 이는 수면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고... "이게..... 이게 뭐야아아아?!!" 눈과 수면에 비친 메리의 모습은 이미 사람의 형상을 잃은 상태였다.
이미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할 수를 넘은 사지에는 손가락과 발가락 대신 검푸른 곤충의 다리 형상이 대신 돋아나 있었으며,
관절부마다 채 마르지도 못한채 돋아난 얇고 투명한 곤충의 날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인간과 근육과 곤충의 외골격이 들쭉날쭉하게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몸에선 피와 체액이 터지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비대해진 인간의 얼굴형에는 인간의 머리칼이 듬성듬성 나있었으며, 얼굴의 반을 넘게 차지한 곤충의 거대한 겹눈 속에는 인간의 안구가 홑눈처럼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인간도, 차원종도 되지 못한 무언가였다. "내 몸! 내 몸을 어떻게 한 거야아?!!!" "....일단 정정해두지. 지금 네 모습엔 나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어. 이 공간은 영혼과 마음을 비추는 곳, 스스로의 본질을 비추는 장소다. 외골격이 생긴건 데르마토비아와 섞인 탓이겠지만... 섞였다하여도 이곳에서 외형의 비틀림은 곧 내면의 비틀림이다." "네가 사람이길 포기했기에, 네 본질도 사람의 형태를 잃었을 뿐." "인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내가, 사람이길 포기했다고!?" "이 공간이 규정한 사람이란," 한발짝 "스스로의 이기와 탐욕을 이해하면서도 타인을 위해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또, 한발짝 "증오와 분노 대신 용서와 자애를, 원한과 미움 대신 사랑을.... 스스로의 부(不)를 억누르며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는 자들." 또 다시, 한발짝 "상처입고 검댕을 뒤집어 써가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흉터와 때묻은 평범한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 어느새 남자는, 메리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타인의 상처와 검댕조차 품고 보듬으며 사랑하는 강한 선의를, 미워하지 않을 용기를 귀히 여기는 자. 이 공간이 규정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치지만... 강한 마음을 가졌을수록 스스로가 바랬던 모습을... 아니, 이것까진 알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충격으로 기억 못하는 모양인데.... 당신은 이미 죽었어. 데르마토비아를 포기하자마자 플라이 타입들한테 잡아먹혔거든. 그리고 인류의 진보라... 죽어가면서 인류 따위 멸망해버리라고 말한 것도 기억 안 나나봐?" 남자의 말에 마지막 순간의 기억마저 선명하게 떠올랐다. 산채로 씹혀가며 소마 그 실패작과 인류를 저주하고 마지막 숨을 들이키는 순간, 보았다.
이 남자의 곁에 낡은 깃발이 나타난 것을. 깃발을 쥐자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 깃대를 내려치고 소리 없는 울림이 퍼진 순간.... 나는 이곳에 있었다. "자아... 그럼 다 기억난 것 같으니... 시작하자고." 남자는 눈을 감으며, 깃대를 가볍게 내리쳤다.
쿠구구구구------!!
그 순간, 세계가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감히... 제가 바랍니다. 제 앞의 존재가 스스로를. 비추어보기를.] 폭풍우는 모든 걸 무너뜨릴 기세로 몰아쳐갔고, 짙은 잿가루가 세상을 잿빛으로 덮을만큼 흩날렸다. [죄를 비추소서. 신념을 지키며 사랑한 이에게 길을. 수많은 눈물을 짓밟은 이에게 잊어버린 재회를.] 폭풍과 잿가루가 뒤섞여 더욱 거칠게 몰아쳤고, 세계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고 비명을 토해냈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아!?" "...호들갑 떨지 마. 세계가 당신을 비춰보는 중이니까." 균형을 잡기조차 어려운 가운데, 남자는 그저 평온히 메리를 지나 그 뒤로 걸어갔다. "당신의 생을 비춰보고서 세계가 그에 맞게 변하는 거니까. 당신이 신념을 지켰다면. 혹은, 수많은 이들이 당신에게 구원받았다면.... 그에 걸맞는 세계가 펼쳐질거야. 만일....." 남자가 뭐라 더 말하고 있었지만, 귀를 찢을듯한 소리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묻혔다. 그 이상 앞을 볼 수조차 없을 폭풍에 메리는 눈을 감았고....
....
......
........
그리고, 조금 전의 소란이 거짓말인 것처럼. 귓가에 적막이 맴돌았다. "....자, 앞을 봐. 당신이 맞이할 세계야." 고요 속에서 부드럽게 울려퍼진 남자의 목소리에 메리는 천천히 눈을 뜨고 펼쳐진 세계를 목도하였다.
쏴아아아아.......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함께 잔잔한 빗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느껴져왔다. 피부를 따뜻히 데우는 햇살에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넣은, 푸른 하늘이였다. ".....하하! 그래! 인류를 위해 평생을 봉사해온 나다! 내게 걸맞는, 아주 멋진 세계다!!" 메리는 확신에 차서 목소리를 높여 폭소했다. 투명하게 비추는 물의 바닥과 푸른 하늘, 햇볕이 들어오는데다 불어오는 비바람조차 기분 좋은 세계였다. 잿가루만이 가득했던 잿빛 세계와는 대조조차 할 수 없는, 구원의 세계가 아닌가! "....안타깝네." "뭐....?" 메리의 웃음을 멈춘 것은. 긴 침묵 끝에 내뱉은 남자의, 말이였다. "그들은, 널 용서할 생각 따윈 없는 모양이야."
첨벙!
수면 아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손이, 메리를 붙잡았다. "어? 뭐, 뭐야!? 이거 놔!" 촥!! 촤아아악!!! 메리는 다급히 그 손을 걷어찼지만, 수면 아래서부터 솟아난 각양각색의 수많은 형상들이 메리를 붙잡았다. 머리가 가로로 갈라져 열려있기도, 몸 밖으로 나온 내장을 체액을 흘리며 지면에 질질 끌기도, 맞지 않는 몸을 강제로 기워넣은 듯한 이형까지.... 괴기하고, 뒤틀리고, 인간을 닮기도, 다양한 차원종들을 닮기라도 한 그것들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러대며 메리를 붙잡고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의사답게, 많은 사람들을 구했네. 당신 연구로 살은 사람도 많고." "그런데 그 사람들의 감사와 사랑으로 쌓아놓은 그 많은 선(善)을. 몇번을 덧칠하고도 남는 원한이라.... 짓밟아온 피와 눈물의 무게를 얼마나 가벼이 여긴 건지." 수많은 속설에서는 죽은 자는 저승에서 죄를 심판받는다. 했지만, 남자가 아는 이 세상의 저승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길일 뿐. 물론 죄업에 따라 생의 무게가 가벼운 것으로 되살아는 정도지만. 모든 것을 잊고서 다른 생으로 업보를 치르는 것이 옳은 것인가. 수많은 생을 살아온 남자는 늘 고뇌했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이 공간을 찾았을 때 찾은 기능. 생의 경계에 있는 자를 이 세계로 데려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의 죄업을 비추어 더 나은 다음을 주거나 그 죄업을 영혼 스스로에게 직접 치르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죄업도 아닌 다른 자의 죄업을 치르게 만드는 것은 생을 살아가는 자들의 과제이며 의무. 생자가 망자의 영역까지 침범해 죄업을 치르게 하는 것은 섭리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그렇기에, 남자는 죄업을 치른 사람과 같은 무게의 업보를 지는 것으로, 그 영혼에게 직접 죄업을 치룰 수 있도록 하였다. "놔, 놓으란 말이다!!!" 메리는 끌려갈수록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이 저들에게 받은 원한을 받을 것임을. 영원히 안식할 수 없음을.... "놔줘, 제발 놔달란 말이야.....!!! 날 구하란 말이야아아아아!!!!!" 메리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지만,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 의해 목소리를 잃은 자들의 원한이. 그녀의 목소리를 앗아갔기에. 자신을 조여오는 손들에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 의해 사지를 잃고, 자유를 잃은 자들의 원한이. 그녀의 몸을 붙들고 뜯어갔기에. 머리가 열리고 내장이 헤집어지는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 의해 빛을 잃은 자들이 그녀의 시선을 붙들었기에. 그녀에 의해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들의 원한이 그녀가 고통을 외면치 못하도록 고통을 살렸기에. 정신을 잃어도 강제로 정신을 되찾아 유린당하던 이들의 원한이 그녀가 미치지 못하도록 축복해주었기에. 저항할수도, 고통을 외면하지도, 하물며 미치지도 못한 채 메리는 수면 밑으로 끌려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원한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당신은 그곳에서 그렇게 증오한 세계와 그 아이, 소마를 강제로 보게 될 거야." "안녕히. 메리 셀리 브리지스톤. 그곳에서 네가 증오한 그 아이와 세계가 아프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감상하기를." "-------!!!" 수면 밑으로 끌려간 메리의 몸이, 끝없이 가라앉아갔다. 반사된 하늘에 가려질 때까지 흐릿하게.... 메리가 사라지자, 세상의 반이 조금씩 허물어지더니 다시 끝없는 잿빛 먼지로 이뤄진 세계가 그 반을 채웠다.
쏴아아아아아아....... 빗소리 같기도, 쌓여있는 잿더미가 흩날리는 소리 듯한 소리가 공허히 공간에 울려퍼지고 있다. 사박, 사박.... 나는 천천히 잿더미의 세계로 걸어들어갔다. 한참이기도, 찰나였던 것 같기도 싶었던 시간을 걸어 깊숙히 들어갔고... 어느 한 곳에 다다랐다. ....만약 메리가 자신을 소중히 여겨준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소마가 그녀를 사랑하길 포기하지 않았다면 다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를 곳이였다. 내세, 낙원, 황혼녘의 기적....혹은 어찌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추억을, 기치를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자들이 다다르는 곳. 다음 생을 받기도, 영원한 안식을 받을 수 있기도, 누군가를 지켜주는 기적조차 되어 세상에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곳. 잿가루 휘날리는 바람 속, 세월의 검댕에 더럽혀지고 위태롭더라도 지켜온 단 하나의 작은 마음을 피어 있는 곳....
한뼘 남짓 될까싶을 정도로 작게 풀과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는 나의 신념을.... 조심스레 다가갔다. 소중히 피어난 그 꽃을 차마 만지지 못하고 주변에 쌓인 먼지만 털어주었다. 나의 신념을 지키고 있기에 피어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업을 지고 있기에. 수많은 가능성을 죽여온 [태양] 모든 죄업을 받아들였기에 영원토록 닿을 수는 없는 나의 안식처...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소중했던 모든 걸을 잃고 홀로 사라지려 했던 그를, 나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그 힘과 죄업을 받아들인거니까. 몸을 일으켜 폭풍우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 세계 속에서 기다리는 수많은 자들이.. [태양]에 의해 사라져버린 세계의 모든 생명들이 소리없는 아우성을 쳐 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보채지 마. 어차피 너희를 미룰 방법도 없지만, 너희를 외면하지도 않을 거야." 그래. 절대 외면하는 않는다.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할 나의 죄니까. 그래도...이번이 마지막. 공평하게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무대, 마지막 기회니까... "....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최고의 삶을 보여줄테니....조금만 더 지켜봐 줘. 최선을 다해 뛰어든 나의 무대를, 이 삶을 화려하게 모두 불태우고 나면... 너희에게 꼭 갈테니까." 나의 죄에게 잠시의 이별을 고하며, 천천히 영계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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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온이 사라지기 무섭게, 폭풍우의 세계에 있던 모든 원한이 꽃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더럽힌다. 꺾는다. 부숴 으깬다. 죽인다. 각자의 생각은 모두 달랐지만, 오직 그의 마음을 망가트리고자 악을 품고 꽃을 향해 달려들었다.
텅-------
셀 수 조차 없는 그들의 군세를 가로막은 것은, 붉게 빛나는 실의 장막이였다. [기다려 달라는 말 듣지 못했나? 기다려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텐데.] 오늘도 우릴 가로막는가? 비켜라, 대용품. 그의 죄를 떠맡은 그를, 우리는 더이상 기다릴 추호 따윈 없다. [나도 비킬 생각 따윈, 추호에도 없는 걸? 이미 내가, 그 아이의 죄를 대신하기로 했거늘.] 그 죄를 받을 그릇이 된다고, 네놈이 우리를 대신 받는다 해도 우리의 원한은 저것에 향할 뿐. 그렇게 애를 쓴다고, 그가 네놈의 고통을 알아주기라도 할 것 같나? [내가, 그런 걸 알아주길 바래서 이런다 생각하나?] 그 순간, 세계가 지평선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너머로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타오르는 붉은 석양과 붉게 반짝이며 부서지는 파도가 흩날리는..... 절벽가의 바다였다. [쓸데없는 말은 필요 없지 않나. 와라. 너희가 나를 받을 생각이 없다면...] [나는 영원히, 이 꽃을 지킬 뿐.] 석양에 반사된 남자의 붉은 머리칼 더욱 더 붉게 타올랐다. 끝없는 죄업이, 달려들었다. 저 남자를 꺾고, 저 꽃을 증오하고자. 남자는 그저 막아내고, 막아냈다. 그 끝이 없음에도 끝없이, 또 끝없이. 자신의 희망인 그 마음을 위해. 비운은 태양보다도 더 붉게 타오르는 눈을 빛내며 영원의 증오를 가로막는다.
-FIN-
안녕하세요! 비해랑입니다! [24.03.31~25.09.26] 센텀시티의 시작을 알린 프롤로그부터 이번의 영계편까지 총 56편의 긴 시간이였음에도 여기까지 함께해주셔 감사하다는 말씀으로도 부족하게 느껴지네요. 많은 시도도 있었네요. 제목의 다양성부터 시작해서 문장의 변화, 커미션 일러의 삽입, 중간에 외전도 해보고 야설....도 처음 시도해 봤네요. 가장 큰 일을 2개만 압축한다면 하나는 문장의 세밀화. 다른 하나는 개정작업이였던 것 같습니다. 세밀화. 소설을 읽으면서도 여러분에게도 좀 더 보기 편하고, 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용을 연구하는 것이였습니다. 소설작가분의 문장을 여러번 읽고 파악하며 좀 더 몰입감있게, 감정에 와닿도록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예전보다 낫지만 그래도 아직 미숙하다는 게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개정. 최대한 원래의 설정을 파괴시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세세한 변화는 바꾸기가 어렵더군요. 현재의 흐름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최대한 그에 맞게 재설정 하는 작업은 꽤나 고단했지만 그래도 의미있던 작업이였습니다. 의외로 개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가장 초반의 제 작품을 읽는 것이였습니다! 읽으면서도 와- 여러분 어떻게 이걸 읽으셨던 걸까.... 진심으로 이불킥하며 개정했었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재미있던 변화는 Ai 일러스트의 도입이였습니다. 커미션을 하기에 비용이 너무 세다보니 눈을 돌린게 Ai였습니다. 처음엔 시행착오로 못 볼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얼추 익숙해져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는 퀄리티도 나오고 있어 나름 좋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럼 앞으로의 예정입니다. 먼저, 7부 이전에 그림자 요원을 새로 개정하고자 합니다. 스토리의 연결이 편하도록 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의 능력에 맞춰 좀 더 깊이 있는, 좀 더 몰입감 있는 그림자요원으로 드리고 싶어 개정을 결심하였습니다. 기존의 그림자요원과도 비슷하면서도 좀 더 깊은, 그림자요원을 선보이겠습니다. 다음은 7부. 남극 편입니다. 역시 기존 내용과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자온만의 오리지널 스토리가 추가될 예정입니다. 클로저들이 몰랐던 숨겨진 자온의 얘기를 선보이겠습니다. 기존의 스토리 확인과 스토리 비축 등 본편은 빠르면 12월 말에서 1월초, 늦어도 1월 말 안에는 선보일 예정이니 한번씩 떠오를 때 자온의 이야기를 다시 같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길었던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도, 자온도 조금 더 성숙해지는 이야기이며, 삶이였습니다. 미숙한 저희의 이야기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워진 그림자 요원으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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