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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트리스의 특별한 하루. 작성일2025.01.09 조회730

작성자GAAAA

순교자의 언덕 유니온 임시 본부.

파리를 구한 클로저들은 이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앞으로 찾아올 교단과의 격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 흐흐흥~.”

 

그래.

클로저들은 말이다.

 

이 노래도 꽤 좋네.”

 

개인천막의 야전침대에 누워 너튜브로 유러버즈의 공연 영상을 보고 있던 트리스는 상관없다는 이야기지.

 

물론, 트리스가 정말 앞으로의 계획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

신서울을 되찾는데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트리스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불꽃의 성역이 된 신서울.

그곳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녀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용의 영지를 선포하는 것은 일종의 본능과도 같은 것.

 

트리스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곳에서 영지를 선포해서 파리 시민들에게 또 다시 잊지 못할 경험을 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

 

그럴 생각은 없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또 그 여자가 아픈 주사를 놓는 거 아닐까.

자신의 눈을 피해 다가와 주사를 찔러 넣은 현명한 조언자, 베로니카.

 

그녀를 떠올린 트리스는 비늘이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숨겨진 그 내면에는 분명 용감한 사자가 잠들어 있겠지.

원래, 조언자라는 건 왕에게 충성을 바치면서도 거리낌 없이 직언을 할 수 있는 과감함을 가져야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그 과감한 행동력이 어느 쪽을 향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잖아?

 

언니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성격 좋은 언니다.

언니의 눈에는 틈만 나면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그 파란 머리의 인간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겠지.

 

.”

 

트리스는 그게 조금 불만이었다.

 

도대체 왜 언니는 그런 약골하고 같은 팀을 이룬거지?

한 대만 툭 쳐도 쓰러질 것 같은데?

너무 불쌍해 보여서 그런 걸까?

그래도 언니한테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안 되겠어. 역시 언니는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인간 세상에 대해 공부하는 게 먼저다.

아는 것이 곧 힘이라는 인간들의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트리스는 지금까지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

야전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너튜브 숏츠를 보며 뒹굴뒹굴 거리고 있는 현직 백수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지금 너튜브를 통해 인간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너튜브를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베로니카 왈.

 

지금은 먼저 인류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잇도록 돕는 게 좋을 것 같아. 공부는... 그 다음에 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트리스는 차원종에게 인류의 역사를 알려주는 경험을 놓친 것에 실망한 레옹을 뒤로 하고 휴대폰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베로니카, 역시 현명해.”

 

그녀의 말대로 인간들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었으니까.

역시 대단해, 너튜브! 휴대폰 너무 좋아!

 

...절대로 공부를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레옹이 교재라고 가져 왔던 그 두꺼운 책을 읽지 않아도 되서도 아니야.

.

 

하지만, 너튜브를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트리스에게도 한 가지 불만이 커져만 갔다.

 

도대체 이 어린이 보호 옵션은 왜 안 꺼지는 거야?”

 

이 망할 나이제한 때문에 보고 싶은 걸 볼 수가 없잖아!

이래서 인간들이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는 것만으로 아이 취급을 하다니!

갓 태어났을 뿐 어른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좀 더 어필해야만 했어!

 

트리스는 속으로 불만을 터트리며 휴대폰을 침대 위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제한 때문인지, 아니면, 볼만한 걸 다 봤는지 계속해서 비슷한 영상들만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내면에 커질 대로 커진 인류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다.

특히, 클로저들에 대한 궁금증을.

 

좋아.”

 

트리스는 직접 그들을 찾아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

지금까지 트리스가 보고 있었던 채널.

신서울 클로저들의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나온 걸 예로 들면....

 

슬비는 정말 세하와 사귀는 걸까.

리아는 정말 컨셉충인 걸까.

볼프강은 혼자 있을 때 정말 책과 대화를 나누는 걸까.

루나의 이마에 햇빛을 비치면 정말 빛이 반사 되는 걸까.

김철수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걸까.

은하는 정말 슬비를 남몰래 따라다니고 있는 걸까.

그리고 자신의 언니 레비아가 속한 늑대개 팀은 정말로....

 

. 언니한테 물어보러 가자.”

 

갓 태어난 어린용은 그렇게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작은 발자국을 딛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 그렇게 된 거였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죠? 클로저 요원님들은 모두 결전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가셨는데 말이에요.”

 

타이밍이 조금 좋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

 

이빛나 씨가 결전 프로그램 건으로 트리스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 기억 하시죠?”

 

그래, 기억해. 나를 가상의 적으로 삼아서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며 집요하게 달라붙었으니까. 진짜, 얼마나 귀찮았는지 몰라.”

 

물론, 트리스는 이빛나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그녀가 과학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맞은 그 주사를 그녀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인간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빛나는 결전 프로그램의 목적이 클로저들의 실력을 향상 시키는 거라 말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트리스가 인류의 적이 되었을 때의 대처법을 미리 파악해두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

 

이해는 한다.

그들은 강대한 힘을 지닌 채 태어난 자신과 다르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잔재주라도 부리고 싶었겠지.

 

물론, 그것이 이빛나의 부탁을 받아들일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어. 언니가 부탁을 해왔는데.’

 

나도 참, 언니한테는 너무 마음 약해진다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언니는 내 단 하나뿐인 가족인데.

두 손을 꼬옥 잡고 트리스, 부탁이야.’ 라는 말을 하는데 어떻게 거절해?

 

무엇보다.

 

어차피 나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질 테니까.’

 

스스로 용의 여왕에 오를 자격을 갖출 정도로.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트리스 씨?”

 

레옹의 목소리 퍼뜩 정신이 든 트리스가 말했다.

 

, 뭐야. .”

 

갑자기 조금 무섭게 웃으셔서요. 무슨 일 있었나요?”

 

트리스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방금, 타인의 경계를 사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래서 트리스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보다 넌? 여기서 뭐하고 있던 거야? 산책?”

 

산책보다는...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레옹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상해서 말이에요.”

 

뭐가?”

 

분명 중요한 강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트리스의 경계심이 1 올랐다.

그 모습을 본 레옹이 미소를 지었다.

 

, 걱정 하지 마세요. 트리스 씨를 위한 인류사 강의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요!”

 

레옹의 의욕 넘치는 미소를 본 트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잊어버리도록 해. 지금은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트리스 씨. 인간들 사이에서는 인류의 역사란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는 거 아세요?”

 

그게 뭐?”

 

지금 인류는 차원종과 함께 또 하나의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에요.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트리스 씨의 언니. 레비아 요원님과 동료 분들이시고요.”

 

레옹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때요? 이러면 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솔직히 조금은.”

 

하지만 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들을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거든.”

 

레옹이 트리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뭔지 저도 알 수 있을까요?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알고 있는 걸지도요.”

 

트리스의 머릿속에 레비아와 관련된 소문이 살짝 떠올랐지만, 그녀는 이내 머리를 저었다.

 

아니, 됐어. 이건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래요? 그것 참 아쉽네요.”

 

하지만 말과 달리 레옹은 어딘가 기뻐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딜 봐서?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는데?”

 

, 그렇게 보였어요?”

 

레옹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트리스 씨가 저하고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서 기뻤거든요.”

 

내가, 너하고?”

 

도대체 어디가?

레옹은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트리스의 질문에 답했다.

 

! 저도 트리스 씨처럼 궁금한 게 생기면 어떻게든 스스로 알아내려고 노력하거든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요!”

 

트리스가 코웃음을 쳤다.

 

잘못 생각했어. 난 그런 성격이 아니니까. 단지, 이번 일에 한해서는 남의 입을 통해 들어봤자 의미 없는 일이라서 그런 거야.”

 

“...그렇군요.”

 

레옹의 어깨가 추욱 늘어뜨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트리스는 다시 언니를 찾으러 가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두 다리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귀찮게.

, 이런 거 신경 안 쓰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게 다 언니 때문이야.

언니한테 영향 받은 게 분명하니까.

 

그런 건 됐고. 네가 잘 아는 게 인류사? 고고학이라고 했었지? 오늘은 아니더라도, 며칠 내에 들으러 갈 거니까 준비나 잘 해둬.”

 

, ! 걱정 마세요! 정말 재밌는 시간이 될 테니까요!”

 

레옹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트리스는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 맞다! 다른 요원님들의 훈련이 지금쯤이면 끝났을 거예요!”

 

그래?”

 

그래서 미련 없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고.

 

대화, 즐거웠어.”

 

트리스 씨.”

 

또 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보자, 레옹이 웃는 얼굴로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강의 때는 맛있는 다과와 차를 준비할게요! 기대해주세요!”

 

차는 됐어.”

 

그건 아무리 우유와 설탕을 넣어도 떫기만 하니까.

 

***

 

거점에 임시로 만든 훈련장에 도착한 트리스가 가장 먼저 마주친 건, 검은양 팀의 윤리아였다.

 

! 트리스다!”

 

아니, 저쪽에서 다가왔다고 하는 게 맞겠지.

트리스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언니와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기기를 점검하고 있는 듯한 연구원들과 관리요원 몇몇이 보일 뿐.

아무래도 이미 자리를 옮긴 것 같다.

 

‘..., 급한 건 아니니까.’

 

어차피 윤리아에게도 물어볼 것이 있기에 트리스는 잘 됐다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

 

! 안녕!”

 

밝게 인사하는 윤리아를 보고, 트리스는 너튜브에서 본 강아지가 생각 났다.

주인이 오자 격하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가.

이름이 분명 골든 리트리버였나?

 

골든 윤리아가 말했다.

 

레비아 선배 찾으러 온 거야? 늑대개 팀은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훈련 했는데. 내가 같이 가줄까? ?”

 

아니, 됐어. 나 혼자 갈 수도 있고, 지금은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 나한테? 진짜? 정말이지? ! 너무 기뻐!”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은 모습에 트리스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신났어?”

 

그야 당연하지! 트리스가 나한테 관심 있다는 이야기잖아? 그럼 기쁘지!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인걸!”

 

트리스는 너튜브에서 본 윤리아의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던 거야?”

 

트리스가 관종, 혹은, 컨셉충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은 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윤리아는 살짝 머쓱해하며 말할 수 있었다.

 

“...아하핫,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너튜브.”

 

! 안 돼, 트리스! 벌써부터 그런 거 보면! 너튜브는 조회수 높이려고 자극적인 내용만 가득하단 말이야! 루머를 사실인 것 같이 말하는 것도 엄청 많구!”

 

내가 보기엔 안 그렇던데.”

 

문뜩 무언가가 떠오른 트리스가 말을 이었다.

 

“...나이제한 때문에 그랬을 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너튜브에 들어갔을 때 추천 영상이 아기상어가 바다를 헤엄치는 동요였으니까 말할 것도 없다.

...짜증나는 건, 그런 유아용 노래를 듣기 좋다 생각해서 세 번이나 연속해서 들었다는 거지만.

그건 모두에게 비밀로 하자.

 

그래? 그러면 다행이다.”

 

그보다, 진짜야? 지금 네 밝은 성격과 활기찬 말투가 만들어 낸 거라는 게?”

 

전혀 다행이 아니었잖아?!”

 

윤리아가 두 팔을 높이 들며 과장되게 반응했지만, 트리스는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싸늘한 모습에 윤리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하하.... 조금 머쓱할지두.”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 정도는 이해해 줄 테니까.”

 

으음~.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뒷머리를 긁적인 윤리아가 볼에 손가락을 대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내 밝은 모습은 콘셉트라면 콘셉트이지만, 내 성격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느낌?”

 

그래. 알았어. 대답하기 싫다는 거지?”

 

! 그런 거 아니야! 진짜라구!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 그거다!”

 

인상을 찌푸린 채 곰곰이 생각하던 윤리아가, 두 손으로 왕관 모양을 만들어 머리 위에 쓰며 말했다.

 

짜잔! 저는 초긍정의 위광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답니다!”

 

“......”

 

“....... 이건 안 좋은 비유였나?”

 

“...........”

 

완전 실패였어! 미안해, 트리스!”

 

신경 쓰지 마. 내가 물어본 거였고, 넌 대답해줬을 뿐이니까.”

 

그래두! 난 분노의 위광 때문에 일어난 일들은 트리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슬쩍 전하고 싶었던 건데, 너무 돌려서 이상해져 버렸어!”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말하지?

속이 깊은 건지, 얕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꼬여버린 인간인지 알 수가 없네.

 

트리스는 고개를 숙이고서 두 손을 모아 용서를 비는 윤리아를 보며 그리 생각했지만, 입에 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그보다, 궁금한 게 더 있어.”

 

윤리아가 고개만 들어 트리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화 안 났어?”

 

화가 났으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거야.”

 

휴우~. 다행이다.”

 

윤리아가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래서 뭔데?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해 줄게.”

 

고개를 끄덕인 트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윤리아에게 말했다.

 

클로저들 사이에서는 연애가 허용되는 거야?”

 

“....?”

 

갑자기 분위기 핑크빛!

윤리아는 혼란에 빠졌다!


***

 

트리스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윤리아가 여고생이라는 것.

그것도 수다를 떠는 걸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성격의 여고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연애 관련 이야기는 실전 상황에서도 입에 담았을 정도였고, 지금처럼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더 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기에 냉정을 되찾은 윤리아가 쉴 새 없이 떠들어 댄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걸 알 수 있었지만....”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특히, 윤리아가 먼저 꺼낸 이슬비와 이세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둘 사이에 수상한 기류가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때 아직 사귀는 것까지는 아닌 단계.

이제 막 썸을 타기 시작한 느낌 정도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그렇게 길게 말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재미있긴 했지만.”

 

윤리아의 말을 끊지 않았던 건, 그녀가 사이사이에 다른 검은양 팀 일원들에 대한 이야기도 끼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지만 궁금하지 않았던 사실들.

검은양 팀의 사소한 특징들을 윤리아는 이상하리만큼 잘 알고 있었다는 거다.

마치, 사전에 자신이 검은양 팀에 대해 물어볼 줄 알고 공부라도 한 것처럼.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그래서야 전직 아이돌이 아니라 사생팬이잖아?

 

그보다... 언니는 어디 있는 거지?”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기 때문일까.

언니를 만나러 간 또 다른 훈련장은 텅 비어있었다.

언니를 찾아 둘러보는 중 다가온 안경 낀 음침한 남자가 늑대개 팀은 바람을 쐬러 언덕 위로 갔다고 했는데...

 

이런. 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용 아가씨.”

 

그곳에는 벤치에 앉은 볼프강 밖에 보이지 않았다.

 

“....”

 

트리스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건 있었지만, 트리스는 알고 있었으니까.

 

책에 말을 거는 건 정상인이 할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 그 소문이 정말이냐고 물어봤자, 볼프강은 아니라고 대답할 거다.

그러니 진실을 알고 싶다면, 지금은 자리를 피하고 모습을 숨겨야 한다.

 

이런 사소한 이유로 몸을 숨긴다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지금은 호기심 해결이 먼저야.

 

그렇게 트리스는 자신에게 말을 건 볼프강을 가볍게 무시한 뒤.

곁눈질로 주변에 은폐 엄폐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 훔쳐보았다.

 

어이, 이봐. 지금 나 무시한 거야? 어흑, 요즘 내 취급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다 큰 어른이 상처 받은 표정으로 우는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무시한 건 아니야. 너한테 할 말이 없는 거지.”

 

그게 더 마음에 아프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깊은 한숨을 쉰 볼프강이 말했다.

 

만약 언니를 찾아 온 거라면 조금 늦었어. 여기서 잠깐 쉬다가 네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면서 내려갔으니까.”

 

“...그래?”

 

언니가 자신을 찾으러 갔다는 소리에 트리스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 본 볼프강의 입가에도.

 

뭐야? 기분 나쁘게.”

 

그 작은 변화를 놓칠 트리스는 놓치지 않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사이가 참 좋아보여서 말이야. 레비아하고 말이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너도 가족이 있으면 알텐데?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움찔!

한 번 몸을 떤 볼프강이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두 손을 맞잡으며 우수에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잘 알지. 아니, 너무 잘 알게 됐지.”

 

, 왜 또.

내가 뭐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분위기 잡는 거야?

 

트리스는 자기 혼자서 땅을 파기 시작한 그를 무시할까 생각했지만...

볼프강 역시 언니의 전우.

 

?”

 

결국, 트리스는 털썩.

 

그보다.”

 

볼프강의 옆에 다리를 꼬며 앉을 수밖에 없었다.

 

, 그 책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서? 그거 진짜야?”

 

볼프강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검은책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있나?”

 

이름이 검은책이야? 너무 대충 지은 것 같네.”

 

금방 사라졌지만.

 

“...모르면서 물어본 거였구만.”

 

딱 봐도 불길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

 

네 말대로야, 용 아가씨.”

 

볼프강이 손가락으로 검은책을 툭툭 치며 말했다.

 

보다시피 가까이 해서 좋을 것 하나 없는 물건이지.”

 

그런데, ?”

 

많은 의미가 축약된 질문에 볼프강은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필요하니까. 파트너와 그 말썽꾸러기 녀석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화 상대가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잠깐. 그거 농담 아니었어?”

 

아닌데.”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트리스가 말했다.

 

혼자 있을 때 책에게 말을 거는 불쌍한 인간. 그래서 친하지도 않은 나를 불러 세워 다른 사람과 한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안타까운...”

 

잠깐, 잠깐! 그냥 듣고 넘길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누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 소마? 소마인 거냐?!”

 

소마? 여기서 왜 그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인간의 이름이 나와? 난 어디까지나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한 사실을 말한 거야.”

 

볼프강은 잠시 트리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언덕 위 벤치에 앉아 혼자 청승맞은 모습으로 책을 쥐고 생각에 잠겨있던 남자.

자신이 못 본 척 지나가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고.

옆에 앉아 자신의 검은책에 관심을 가지자 눈을 번뜩이기까지.

 

내 탓이었나.”

 

볼프강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트리스가 말했다.

 

그래서, 진짜야? 검은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이야기 하자면 조금 길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이 검은책 안에 있는 사념과 말이지.”

 

사념이라.

확실히, 사념 정도는 깃들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책이다.

오히려 이러고서 평범한 책이라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트리스는 내심 수긍하고 질문을 이어갔다.

 

친구가 없는 것도?”

 

나는! 친구가! 있어! 파트너도! 제자들도 있다! 도대체 왜 친구 없냐는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 건데?!”

 

트리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야, 네가 여기 혼자 있었으니까. 다 죽어가는 얼굴로.”

 

“......”

 

순간 볼프강은 할 말을 잃었다.

분명, 트리스의 말대로 자신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을 거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건 힘들 일이니까.

 

하지만 그걸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트리스 마저 눈치 챘을 정도라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그건 이곳에 자신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동료들의 배려라는 뜻이리라.

 

그래서는 안 됐다.

지금 그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은 자신이 아닌 그의 파트너니까.

 

볼프강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 이것 참, 꼴불견이었군. 내가 이럴 때가 아니었는데 말이지.”

 

트리스는 갑자기 후련해진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볼프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멍청했다는 걸 용 아가씨 덕분에 깨달았다는 거야.”

 

그래? 그건 나쁘지 않네.”

 

너무나 쉽게 수긍해버린 트리스를 보며 볼프강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설마 내가 진짜 바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보다.”

 

이봐. 그냥 넘어가는 거야?”

 

볼프강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트리스는 볼프강의 분위기 때문에 지금까지 말 할 수 없었던 불만을 입에 담았다.

 

내 이름은 트리스. 앞으로는 용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고 트리스라고 불러. 이번은 넘어가 줄 테니까.”

 

내 나름대로 친해지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나 보군. 좋아. 앞으로는 그냥 트리스라고 부르지.”

 

알면 됐어, 멍청한 볼프강.”

 

“...멍청한은 빼주면 안 되나?”

 

알았어. 바보 볼프강.”

 

볼프강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내 취급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볼프강의 표정은, 처음과 달리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럼, 난 가볼게.”

 

그렇기에 한 발 먼저 언덕을 내려가는 트리스의 발걸음도 가벼울 수 있었다.

 

***

 

, 맞다. 깜빡했네.

루나의 이마에 햇빛을 비추면 반사되는지 물어봤어야 하는데.

세트의 이빨이 정말 무를 갈 수 있는지, 소마의 어깨 근육이 보디빌더 수준인지도.

 

다시 볼프강에게 가볼까 싶었지만, 트리스는 다음 기회에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으니까.

 

언니는 지금 어디 있을까.

아마 내 개인천막에 있지 않을까?

 

내가 찾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서로 엇갈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잖아?

늑대개 팀의 천막도 생각해 볼 법 하지만, 거기는 다른 사람들도 많으니까 제외.

그러니까 언니는 내 천막에 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살짝 고민되네.”

 

트리스는 발걸음을 멈췄다.

 

역시나 언니의 동료들은 좋은 전사인 것 같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무리하느라 어쩔 수 없이 흔들렸던 자신의 두 다리를 빤히 바라 본 일을 용서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배려해주며, 서로 알아가기를 바라고, 그를 위해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손을 뻗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오세린의 말대로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처럼 보였고.

 

하지만.

그렇기에 언니에게 물어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아니, 그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워졌다.

만약, 늑대개 팀과 관련된 소문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분명...

그들에게 실망하게 될 테니까.

 

! 심각한 표정의 트리스 씨에요!”

 

문뜩 들려온 밝은 목소리에 트리스의 상념이 끊겼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빵이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있는 금발 머리 소녀가 눈에 보였다.

그러니까, 이름이...

 

, 루시 플라티나?”

 

루시 플라티나가 아니라 루시 플라티니에요.”

 

뭔가요, 그 엄청 강할 것 같은 이름은.

루시의 중얼거림을 가볍게 무시하며 트리스가 말했다.

 

그랬구나, 루시.”

 

“...생각보다 엄청 마이페이스인데요.”

 

그래서? 나한테 할 말 있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맛있는 빵이라도 함께 드시지 않을까 물어보려고 했을 뿐인데, 방금 새로 생겼어요. 트리스 씨가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고서요.”

 

그랬어?”

 

하지만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클로저들은 다 이런 성격인 걸까?

 

그래요. 너무 심각해 보여서 혹시 우리가 잘못한 게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로요.”

 

그런 거 없어. 오히려 너무 잘 대해줘서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야.”

 

이 정도로요? 아직 트리스 씨한테 파리 구경도 시켜주지 못했는데요?”

 

,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내가 거리로 나서면 이제야 겨우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는 파리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하모니를 이룰 텐데?

 

물론이죠. 트리스 씨가 나쁜 차원종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나 때문에 파리가 불타게 됐는데?”

 

그건 교단 때문이지 트리스 씨 때문이 아니에요.”

 

루시가 작은 가슴을 피고 그 위에 손을 얹으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러니까 포용의 도시 파리는 트리스 씨를 환영해 줄 거예요! 파리지엔인 제가 보증하죠!”

 

그렇게 선언한 루시는 이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한 동안은 신서울의 시민이어서 큰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요.”

 

그러고 보니 루시는 파리가 고향이라고 들었다.

 

신기하네. 파리하고 신서울은 상당히 멀 텐데. 어쩌다 신서울까지 가서 시궁쥐 팀에 들어가게 된 거야?”

 

“...그건 정말 길고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왜 갑자기 텅 빈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걸까.

트리스는 고개를 움직여 루시와 시선을 맞췄고, 루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뭔데?”

 

정말 듣고 싶으세요?”

 

그래.”

 

루시가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전 레비아 씨를 오해한 적이 있었거든요.”

 

트리스의 기세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언니를? 무슨 오해? 당장 말해 봐.”

 

루시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 레비아 씨가 나쁜 마음을 숨기고 착한 척을 하는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세상에 파멸을 불러오는 나쁜 사람이요.”

 

뜨끔!

 

그래서 무리한 방법으로 한국으로 가게 됐죠. 그리고 나서... 정말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정말 많은 일들이요. 레비아 씨와의 오해를 푸는 건 그 다음이었죠.”

 

루시가 트리스를 올려다보며 밝게 웃었다.

 

그렇게 전 레비아 씨가 그 누구보다 상냥한 레비아 씨라는 걸 알게 됐어요.”

 

루시의 웃음을 보는 순간.

트리스는 그녀가 레비아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은 것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며 웃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자신에 대한 믿음?

혹은, 희망?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

트리스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감정에 기반 한 미소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결국 트리스는 루시의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에서 눈을 돌리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당연한 이야기는 그만해. 그보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으니까.”

 

저한테요? 혹시, 파리의 관광 명소라면...”

 

파리가 아니라 시궁쥐 팀에 대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언니를 만나는 건 조금 뒤여도 괜찮겠지.

...마음의 준비도 더 필요하고.

 

***

 

루시는 성심성의껏 트리스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를 통해 트리스는 소문의 진실과 거짓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김철수가 실제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것은 사실.

미래가 가끔 볼을 부풀릴 때 정말 귀엽다는 건 사실.

은하가 이슬비를 스토킹 한다는 것과 애리의 나이가 37살이라는 것은 거짓.

자신의 감옥관 속에서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사실.

 

그리고 은하 씨와 애리 씨가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은 거짓이에요.”

 

“...? 그런 소문도 있었어?”

 

“....”

 

루시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트리스의 뜨거운 시선에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게 말이죠. 처음 애리 씨와 합류했을 때 은하 씨와 사소한 말다툼 같은 게 조금 있었거든요. 두 분 다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라서요. 시민 분들께서 그걸 보고 저희들 사이가 안 좋다고 조금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

 

그러면 사이가 안 좋은 거 맞잖아?”

 

아니에요.”

 

루시가 딱 잘라 말했다.

 

, 그런 말도 있잖아요?”

 

흠흠, 목을 가다듬은 루시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이가 좋으니까 싸우는 거다. 사이가 좋지 않다면 싸우는 일도 없지.”

 

뭐야, 그건? 성대모사?”

 

루시가 두 볼을 붉혔다.

 

, 아무튼! 지금은 다들 가족 같은 관계라는 뜻이에요.”

 

가족이라는 단어에 누군가를 떠올린 걸까.

루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래요. 가족.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거죠.”

 

눈앞의 소녀는 누군가를 잃은 적이 있는 걸까.

트리스는 괜한 짓을 하는 거라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그녀에게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건 나도 알 것 같네. 나한테는 언니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레비아 씨는 정말정말 강한 사람이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트리스 씨를 지켜줄 거예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위로 받아버렸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지만 트리스는 자신의 마음을 다르게 표현했다.

 

언니가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내가 언니를 지키는 거니까.”

 

그럼 레비아 씨와 트리스 씨는 서로서로 지켜주는 사이좋은 자매인거예요!”

 

그건 괜찮네.”

 

그러기 위해서라도.

트리스는 잠깐 멈추었던 발길을 다시금 떼었고, 그녀의 등 뒤로는 태양이 지고 있었다.

 

***

 

, 트리스. 산책은 즐거웠어?”

 

언니다.

자신의 천막안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레비아를 보고 트리스는 반사적으로 옆에 앉으려 했지만...

 

트리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랬다가는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렇기에 트리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레비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언니, 묻고 싶은 게 있어.”

 

, ? 뭔데 그래?”

 

평소와 다른 자신의 모습에 살짝 긴장한 언니를 보고.

트리스는 깊은 숨을 들이 마시고, 내신 뒤, 뿔을 만지는 척 머리카락을 한 번 정도하고서.

늑대개 팀의 레비아 대원에게 말했다.

 

언니가 있는 늑대개 팀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거든.”

 

그렇게 말하는 트리스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점이 레비아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을 지도 모른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으니까.

 

, 뭐든지 물어봐. 대답해 줄게.”

 

트리스가 말했다.

자신이 보고 들었던 늑대개 팀에 대한 소문을.

 

늑대개 팀은 범죄자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거에는 어떤 기업의 처리부대로 활동했고.

그들은 불법적인 일을 일삼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처분할 수 있는 보험을 들어놨고.

그것은 지금도 존재한다는 소문을.

 

언니의 목에 있는 초커. 그거 정말... 정말 폭탄이야?”

 

그들의 목에.

 

“...트리스.”

 

레비아는 부정하지 못했다.

이제는 큰 의미가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 한들 그 소문은 사실이었으니까.

 

“...언니.”

 

그리고 트리스는 자신의 언니가 대답하지 못한 채 그저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이 버렸던 분노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자라남을 느꼈다.

 

,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누구보다 상냥한 언니다.

보는 순간, 아니,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트리스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범죄 같은 걸 저지를 리 없다.

 

만약, 그렇다 한들.

그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레비아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인간들이 만들어 냈겠지.

 

그런데 인간들은 그녀를 도구 취급하고, 언제든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폭탄을 목에 달았다.

용의 긍지를 짓밟고 노예로 만들었다.

 

... , 언니...”

 

그 사실이 너무나 화가 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펐다.

 

자신이 언니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힘들 때 그 곁에 없었다는 점이.

자신이 힘들 때 옆에 있어주었던 언니와 달리.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서...!

 

트리스.”

 

그리고 레비아는 말했다.

 

이리 와줘, 트리스.”

 

자신이 왕관을 벗어던지기로 결심 했을 때처럼.

자신을 안아주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서.

 

언니, 대답을...”

 

, 트리스. 어서.”

 

레비아의 재촉에 트리스는 어쩔 수 없이 그 품에 다가가 안겼다.

이윽고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레비아의 따스한 체온.

요람에 안긴 것 같은 그 안락함 속에 레비아의 따스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미안해. 트리스. 언니가 돼서 트리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어.”

 

“...사과하지 마. 언니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걸.”

 

트리스가 물어본 건 내가 먼저 말해줬어야 하는 거였는걸. 그러니까 내 잘못이 맞아.”

 

레비아는 트리스의 반박은 듣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꼬옥 껴안았다.

트리스는 그것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트리스를 보며, 레비아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걱정할 것 없어, 트리스. 언니는 정말 괜찮으니까.”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트리스는 레비아의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착하지, 우리 트리스.”

 

언니의 목소리에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분노와 슬픔이 사라지고, 평온과 안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이제 괜찮아.”

 

“...정말?”

 

. 그보다 조금 답답하니까...”

 

! 미안해, 트리스.”

 

깜짝 놀란 레비아가 두 팔을 풀어줬지만, 트리스는 한참 후에야 그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어린아이처럼 레비아의 품에 안겼다는 게 부끄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레비아는 볼을 붉히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트리스를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어디 부터 이야기 해볼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어떻게 트레이너와 동료들과 만나게 되었는지.

그들과 함께 무슨 일을 해왔는지.

레비아는 하나도 숨기지 않고 트리스에게 말해줄 생각이었다.

트리스와 함께 오늘 밤을 새서라도.

 

“...오늘 말고.”

 

동생이 거부하지 않았다면.

 

?”

 

다음에 해줘. 오늘은... 왠지 힘들 것 같으니까.”

 

...”

 

아무래도 트리스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상당히 부끄러웠나 보다.

레비아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아니, 오히려 조금 기뻤던 일이었는데.

 

누군가에게 의지가 된다는 건 이렇게 기쁜 일이었네요, 트레이너 씨.

그러니까 저도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 동생을 지켜주겠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트리스를 배려해 주자.

 

알았어, 트리스. 그러면 언제든지 트리스가 듣고 싶을 때 이야기 해줘.”

 

.”

 

대신, 그때는 다른 분들하고 같이 있을 때 이야기 해도 괜찮을까? 이건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거든.”

 

그건... 괜찮아.”

 

언니의 가장 오래된 동료들과는 자신도 제대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그래. 정말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언니가 가면 베개에 얼굴을 묻고 물장구를 치고 싶을 정도야!

 

그럼 트리스. 오늘은 언니하고 함께 잘래? 오늘은 서로 이야기 많이 못했으니까.”

 

...그건 내일 해도 되겠지.

 

“....”

 

부끄럽지만, 조금 더 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거든.

 

오늘은 정말 특별한 하루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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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1

0/200

  • 케리드웬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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