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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파이슈에 자매 이야기 작성일2024.12.24 조회873

작성자애쿼머린

180818 ~ 180831 writing

 

 

 

 

 

그건 그렇고 정말 으슬으슬 춥네요. 기분 탓인지 전에 왔을 때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그렇습니까...”

 

도윤의 말에 파이는 휠 오브 포츈 바깥의 날씨 상황을 그때서야 체크했다. 흐릿한 회색 사이로 간간이 빛 같은 것이 내리쬐는 게 보였다. 하지만 거센 바람과 함께 날아오는 것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빛은 희끄무레한 색으로 보일 뿐이다.

 

파이가 중얼거렸다.

 

눈보라가...치고 있군요.”

눈보라가 잦아들면 탐색을 해주세요. 이런 날씨면 아무리 얼음을 다루는 손님이라도 많이 추우실테니...”

그 넓은 마음 씀씀이, 감사합니다.”

 

파이는 곧장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칼집에 있던 검을 빼들어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틈이 날 때마다 무기를 잘 닦아두라는 할머님과 촌장의 잔소리를 듣고 자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검을 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한기(寒氣), 때맞추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 탓에 파이는 그 때의 기억이 무심코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때도 이렇게 눈보라가 쳤었죠.”

그 때라면?”

 

도윤의 물음에 파이는 잠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검을, 제 동생 슈에가 발견했던 때입니다.”

, 그러시군요...그러고 보니 손님의 검은 제1위상력을 다루는 검이고, 손님 외의 사람이 만지면 곧바로 얼어붙는다고 들었는데, 손님의 동생 분은 어찌저찌 검을 만질 수 있으셨던 모양이네요.”

원래부터 이 검의 주인은 제 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제가 빌린 것뿐이지요...이야기가 제법 길어질 거 같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들어주시겠어요?”

 

도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파이에게 이런 말 꺼내도 괜찮으냐는 안색을 표했다. 파이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파이가 제일 힘들어하는 적의 일은 그 때보다 조금 후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눈보라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이런 옛날이야기 하나둘쯤을 꺼내기에 딱 적당한 때였다.

 

 

 

 

 

-슈에, 슈에!

 

그날의 파이 윈체스터는 한참이나 제 동생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윈체스터 자매가 사는 마을은 경계선을 조금만 나가도 외진 곳을 만나기 쉬운 지리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절경을 이루는 절벽, 하지만 조금만 발을 앞으로 내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거울 같이 투명한 맑음을 자랑하지만 제 본래의 깊이를 알려주지 않는 호수 등등. 위험요소는 이토록 많았고, 그 때문에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쉽사리 나가려고도 오려고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자매는 그 자연을 벗 삼아 1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다. 수련이란 명목으로 그 거친 곳에 버려지는 때도 있었지만 자매에겐 이곳은 참으로 친근한 놀이터였다. 하지만 그런 자매에게도 자연은 배려가 없는 편이라, 이처럼 누구 한 명이 갑자기 사라지면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생전에는 잘 안 오던 길까지 가면서 파이는 애타게 동생을 찾았다. 열심히 찾아다닌 덕분일까. 파이의 발밑 부근에서 익숙한, 동글동글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나 여기 있어!

-슈에!

 

한참 찾아다녔잖아...! 구릉 밑에서 슈에는 살짝 혀까지 보이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뭐라고 투덜거리기도 전에 장난기 많은 동생은 언니의 팔을 불쑥 잡아끌었다.

 

-언니, 일루 와 봐! 신기한 걸 발견했어!

-슈에, 그런 것보다 지금 할머님이 널 찾고 계시는 거 알아?

-, 그래...? 하지만 언니, 그건 진짜 보고 가자. ?! 진짜로 신기해서 그래!

 

파이는 슈에의 저 애처로운 눈빛에 참 약했다. 파이는 언제나처럼 슈에를 이길 수가 없었다. 실력으로든, 동생을 둔 언니로든. 심지어 고집을 저렇게 부리는 슈에는 더더욱 이길 수 없었다. 잠깐만 보고 가자는 파이의 대답에 슈에는 아주 신나라했다.

 

-언니도 보면 깜짝 놀랄 거야!

 

게다가 위풍당당하기까지 했다. 파이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슈에가 저토록 흥분을 하며 자신에게 꼭 알려주고자 기를 쓰는지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슈에의 손을 잡고 금방 도착한 곳은 사람 두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의 작은 굴이었다.

 

평소에는 지나지 않는 곳이기에 파이는 상상치도 못한 곳에 있는 그 동굴이 제법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런 데에 굴이 있었구나?

-.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야!

 

슈에는 그 말을 끝내자마자, 자기 먼저 그 굴에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곧장 언니, 어서 들어와 봐!’ 라며 파이에게 재촉을 한다. 처음 들어가 보는 어두컴컴한 곳이지만, 슈에가 있어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슈에는 이미 한 번 들어가 봤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슈에를 믿고 파이 또한 그 굴에 들어갔다.

 

굴은 입구 쪽만 좁았을 뿐, 갈수록 너비가 넓어져 중간쯤에 왔을 때는 파이는 일어서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굴 안은 이렇게 넓구나. 나중에 임시 대피소로 딱 맞는 곳이구나.

-, 하지만 언니. 내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거야!

 

슈에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듯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동굴 제법 깊숙한 곳에 왔는데도 어디서 빛이 들어오기라도 하듯, 굴 안은 밝은 빛이 가득했다. 아니, 굴 옆에 박혀있는 정체불명의 수정들에게서 나오는 빛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바위에 꽂혀 있는 저 아름다운 검이 자연적으로 내뿜고 있는 빛이었을까.

 

옅은 하늘색의 빛을 내뿜는 신비로운 검의 분위기에 파이는 잠시 넋을 잃었다. 파이의 그런 표정을 보며 슈에는 아주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라면 틀림없이 이 검의 아름다움을 자신과 같이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았다.

 

파이는 물었다.

 

-슈에, 이 검은...?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내가 처음 왔을 때부터 이 자리에 이렇게 꽂혀 있었어.

-보통 검은...아닌 거 같아.

-. 이 검 가까이에 가보면 이상할 정도의 한기가 느껴진다?

 

정말이었다. 살짝 그 검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도 한겨울의 매서운 눈보라를 맞은 듯, 피부가 매웠다. 그 탓에 파이는 검을 잡으려던 손길을 도중에 그만두었다.

 

-언니, 이거 혹시 옛날 어느 왕조의 보검(寶劍)이 아닐까?!

-보검?

-! 막 이 주변으로 피난 온 어느 왕조의 일원이 자신의 보물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이 동굴에 숨겨놓은 거지!

 

그럴 듯 했다. 아주 날렵하고 맵시 있게 생긴 검이 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이런 외딴 곳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참 이상했다. 슈에의 말처럼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일을 말해줄 유일한 목격자인 검은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 번 할머님께 가져가볼까? 할머님은 모든지 다 알고 계시잖아.

-그럴까? , 근데...지금 밖에 눈보라가 치네.

 

자매가 들어온 입구 주변이 새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아까부터 날씨가 안 좋았는데, 그새 눈보라가 치는 모양이었다. 날씨가 짓궂어지기 전에 슈에를 찾아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던 사실을 파이는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파이는 그 검을 등지고 앉아, 슈에에게 말했다.

 

-그럼 여기서 눈보라가 그치길 기다린 다음에 가도록 하자.

-! 오랜만에 이렇게 언니랑 같이 있네~

 

슈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언니와 오랜만에 단둘이 있다는 것에 무척 기쁜 듯 했다. 파이도 마찬가지였다.

 

슈에가 일족의 후계자로 선택받은 이후, 파이와 슈에의 시간은 어긋나기만 했다. 어쩌면 슈에는 엄청난 걸 보여줄게! 라곤 했지만 오히려 더 원했던 건 파이와 이렇게 오랜만에, 나긋한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늘한 한기에 몸을 살짝 떨며 파이가 말을 먼저 꺼냈다.

 

-슈에,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 나는 항상 바쁘지, . 후계자의 자리가 그렇게 버거운지 몰랐어.

-넌 잘 해낼 거야. 슈에 넌 천재잖아.

-천재라고 해도 모든 걸 다 잘 할 순 없어, 언니.

 

그래도 재능 없는 나보단 낫잖아.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자매의 일족의 특성상, 파이에게는 그것이 참 독이 되었다. 일족 중에서도 제일 실력이 없기로 정평이 난 언니와, 모든 걸 가뿐하게 해내고 아름답기까지 한 천재인 동생. 마을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기에는 참 많은 제공을 해주는 요소였다.

 

그 때의 눈보라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슬슬 이야깃거리도 떨어지고, 몸이 얼어붙어가는 도중에 슈에가 말했다.

 

-언제 그칠까, 눈보라...

-당장은 안 그칠 거 같은데...

-언니, 우리 꼭 붙어있자. 그럼 조금은 더 따뜻할 거야.

-, ..., 그래...

 

슈에는 자신의 언니가 참 좋았다. 재능이 없는 것에 탓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을 하는 언니가. 그러나 그런 슈에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그 당시의 파이는 슈에에 대한 질투심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태연하기까지 한 슈에의 태도가 파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묘하게 자신이 닿은 곳의 몸이 굳어있는 제 언니를 보며 슈에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언니는...내가 싫어?

-?

 

허를 찌르는 말에 파이는 저절로 몸이 움찔했다. 그것이, 슈에에게는 긍정의 답처럼 느껴졌기에, 슈에는 파이의 팔을 일부러 더 꽉 잡았다.

 

-아니...요즘 보면 언니가 일부러 날 피하는 거 같아서.

-...

-혹시 그 때, 나 때문에 다친 상처가 아직도 아파? 그래서 내가 껄끄러워?

-아니야, 슈에. 그 때의 상처는 이미 다 나았어. 낫지 않은 건...

 

아마도 내 마음일 뿐. 허나 그걸 감히 말할 수가 있겠는가. 질투를 하고 있지만, 파이도 제 동생이 너무 좋았다. 그 근본이 바뀌지 않는 한, 아마도 이런 미묘한 어긋남은 계속 될 것이다.

 

-아니다, 아니야...아무것도 아니야.

-언니는 가끔 보면 너무 착해서 탈이야. 말을 해야 알아듣는 것도 있다고. 추측만으론 어떤 해답을 줄 수 없어.

-내가 보기에는 그런 말을 하는 네가 더 착하구나, 슈에.

 

파이는 자기보다 약간 큰 자신의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할머님이 칭찬을 해줄 때마다 자매에게 해주던 행동이었다. 물론 슈에가 파이보다 그 쓰다듬을 받는 빈도수가 훨씬 높았지만 말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대화 자주 하자.

-그래...

-그러고 보니, 곧 후계자 결정 최종시험이지?

-으응...

-나 언니처럼 열심히 할 거야! 언니, 우리 최선을 다 하자~!

 

슈에는 너무 착했다. 자신의 우월함을 결코 언니에게 보이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늘 손가락질을 받는 언니를 유일하게 감싸주는 아군.

 

그런 슈에를 파이가 감히 싫어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아기 새가 어미 새를 보자마자 자신의 어미라고 인지하는 것과 같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근데 언니, 이 검 주변에 있으니 묘하게 더 추운 거 같아.

-그래?

-으으...난 추운 게 싫어...

 

이름이 ()’ 인 것과 반대였다. 슈에는 여름을 좋아했다. 청량한 여름 하늘과, 여름 특유의 향기가 파이와 같다면서. 슈에는 파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마저도 그렇게 정했다.

 

슈에가 자기 혼자 발광을 하는 검을 뒤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맞다. 이 검, 뽑아서 할머님께 가져다 드려야하지 않을까?

-꽤나 단단히 박혀있는 거 같은데...

-언니가 뽑아볼래? 언니는 위상능력자잖아!

 

맞다. 그랬다. 지금의 슈에와 그나마 동등하게 있을 수 있던 이유는 파이가 위상능력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미 결정이 났어야 할 후계자의 지목도 그렇게 늦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봤자 무엇일까. 어차피 정해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는데...헛된 희망만 괜히 품고, 슈에에 대한 미움이 극으로 치닫게 된 그것이 참...싫었다.

 

파이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냥 달리기 기록이 줄어드는 것뿐인데...근력 계통은 아니라고...

-언니는 뽑을 수 있을 거야! 자신을 가져!

 

만약 그 때, 파이가 먼저 그 검을 뽑았다면 그 운명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는 과거의 한 조각, 남은 후회일 뿐.

 

파이는 결국 그 검을 뽑지 못했다. 슈에 앞에서는 이상하게 위상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매번 주눅이 들었다.

 

-, 난 못하겠어, 슈에...

-그럼 일단 내가 뽑아보고, 안 뽑아지면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뽑자. 알았지?

-, ...

 

소심한 언니와 달리 당찬 동생은 용감하게 그 검을 뽑아들었다. 그것도 아주 가뿐하게. 슈에는 본인이 뽑고도 매우 놀라워했다.

 

-, 언니?

-슈에...?

-이상해...이 검...왜 이렇게 싸늘한 거지...?

 

검은 보통 금속 재질이었다. 그렇기에 차가운 온도에 있으면 싸늘한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슈에가 그 말을 내뱉으면서도 당혹스러워했다. 마치 자신이 잡은 이 검에는 알 수 없는 힘이 득실거린다는 걸 알아차린 듯이.

 

슈에는 그제야 바깥의 풍경이 아까와는 달라졌다는 걸 인지했다. 바깥은 언제 눈()에게서 색을 빼앗겼냐는 듯이, 제 본연의 색을 내뿜고 있었다.

 

-?! 눈보라 그쳤다!

-그러네.

-어서 할머님께 가서 보여드리자!

 

슈에는 검을 쥔 채, 먼저 달음박질로 밖으로 나아갔다. 파이는 그런 동생에 비해 느긋하게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까지 깔끔히 털고 천천히 걸어왔다. 파이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슈에는 저만치 먼저 가 있었고, 등만 보이고 있는 상태였다.

 

파이는 중얼거렸다.

 

슈에, 난 항상 네 뒷모습밖에 볼 수 없는 거겠지...?

 

 

 

 

 

어떠셨습니까, 김도윤 대협.”

흐음...마치 무협 소설의 한 장면 같군요. 수련 도중에 길을 잃어, 동굴에서 눈보라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손님의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군요.”

대협께서는 무협 소설을 좋아하시나보군요. 괜찮으시다면 더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다가 그 아래의 강으로 떨어진 이야기라던가, 독버섯을 잘못 먹고 삼도천을 봤던 이야기라던가...”

, 그건 다음에 듣기로 하죠. 손님의 인생은 생각보다 스펙터클하시군요.”

하하,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파이는 너털스러웠다. 파이의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 몰랐지만, 제법 많은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그럼에도 눈보라는 그치기는커녕, 점점 더 거세지기만 했다.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 눈보라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네요. 이래가지곤 수색은 무리 일듯 하군요.”

, 그러고 보니...이 검은 얼음을 다루지요. 눈보라를 조정하는 것쯤은 간단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검은 보통의 위상능력자 무기와는 전혀 다른 무기! 실험해볼 가치가 있겠군요.”

그럼, 잠시 밖으로 나갔다 오겠습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이는 즉시 검을 챙겨 작전 구역으로 나갔다. 눈보라가 매서웠지만 그 때의 눈보라만큼 춥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게 무엇이든지 자신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파이는 검을 두 손으로 쥔 채, 조그맣게 고했다.

 

슈에, 미안하지만 너의 힘을 잠시 빌려 쓸게...’

 

단 몇 번의 검 놀림으로 눈보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조용해졌다.

 

 

 

 

 

눈보라를 조정해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검을 이런 식으로 써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기운이 쭉 빠졌다. 파이는 검을 지지대 삼아 잠시 주저앉았는데, 누군가가 파이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아주 신기한 검이구나.

 

어디서 환청이 들렸다. 파이는 지금 자신에게 들린 이 목소리가 환청이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할머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아아, 몸이 너무 피로한 것일까...몸이 더 이상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렇게 추운데서 자면 안 되는데...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하지만 이 검이 있기 때문에, 파이는 타인들에 비해 추위나 더위에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의 상황 탓에 잠도 깊숙하게 자지 못하니 이렇게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건 당연했다. 앞으로의 작전 상황 또한 그렇게 순탄치 않을 것이 보이니 피로를 틈틈이 풀어줘야 할 거 같았다.

 

그럼 잠시라도, 10분밖에 잘 수 없는 쪽잠...이라도. 검이 지켜주고 있는지 이제는 몸이 나른하기까지 하다.

 

파이의 감겨지는 두 눈 사이로 지금 자신이 쥔 검을 가운데에 둔 할머님과 슈에가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파이는 소외된 상태였다.

 

 

 

 

 

-아주 신기한 검이구나.

-할머님도 이런 검은 처음 보시나요?

 

한 공간 안에 분명 세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한데, 파이는 그 누구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할머님은 슈에가 가지고 온 검에, 슈에는 자신이 가지고 온 검에 대한 결과에 대해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파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거리에 있던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이 하는 대화가 또렷이 들리는 곳에 있는데도 이상하게 파이는 벽지 취급이었다.

 

-아주...귀중한 보검임이 틀림없구나. 슈에, 이런 검이 정말 주인 없이 동굴에 있었다는 말이냐?

-! 언니도 같이 있었어요. 그렇지, 언니?

-? 어어...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에 파이는 살짝 당황했다. 아예 두 사람만의 세계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할머님은 계속해서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검에서는 따뜻한 실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계속 성에가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요사스럽게 보던 파이의 귀에 할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이 좀 차갑구나. 너무 오랫동안 밖에 있어서 그런 건가? 아니...내가 보기엔 검 스스로가 냉기를 뿜어내고 있구나...이 성에를 보렴.

-어어...아마도 그런 거 같아요. 할머님께서도 이런 검을 처음 보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내 평생 이런 검은 처음이구나.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을 거 같구나. 그러니까 슈에, 네가 가지고 있거라.

-? , 제가요?

 

자신이 당분간 그 검을 가지고 있으라는 말에 슈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자 할머님은 아주 당연한 소리를 물어보냐는 표정이었다.

 

-네가 먼저 찾은 거잖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는 처음 발견한 네가 주인이다. 그리고...

-...

-그런 검은 재능이 넘치는 네가 주인인 게 가장 잘 어울린단다.

 

마지못해 받은 검을 만지작거리던 슈에는 오히려 파이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작 파이는 담담했다. 역시,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 할머님의 논리는 틀린 것이 없었다. 먼저 발견한 것도 슈에, 그 검을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온 것도 슈에, 그리고 저런 요사스러운 검은 자신과 같이 평범한 자보다는 재능이 있는 자에게 당연히어울린다. 그러므로 당연히 슈에의 것이 되는 게 맞았다.

 

파이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을 바랬기에 이곳에서 계속 있었던 걸까. 할머님의 방밖으로 나가는 파이를 슈에는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 날 밤, 대나무 숲으로 잠시 산책을 가려는 파이를 슈에가 붙잡았다.

 

-언니, 할머님의 말씀은 신경 쓰지 마. 원래 그러신 분이잖아.

 

파이는 살짝 신경질이 올라오려던 참이었다. 그거 때문에 기분 전환 겸 산책이라도 나가려고 했다. 그래서 파이는 착한 동생의 걱정임에도 불구하고 퉁명스럽게 말이 나가버렸다.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내가 언니랑 몇 년을 살았는데! 언니 기분이 어떤지는 다 안다고!

 

슈에는 착했다. 심성이 그런 것도 있었지만, 위대한 사람일수록 항상 겸손하게 살라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은 결과이기도 했다. 그에 반해 파이가 받은 교육은? 네 주제에 겸손해야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라고 배워왔다.

 

슈에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 파이에게는 늘 가지고 있어야 하는 덕목.

 

갑자기 치가 떨렸다.

 

따스한 동생의 손길을 파이는 살짝 내쳤다. 슈에가 덧붙였다.

 

-언니, 밤바람이 너무 차가워. 걸칠 거라도 입고 가.

-됐어. 금방 다녀올 건데. 게다가...난 너랑 달라서 계속해서 수련을 해야 한다고.

-언니...

 

이러려던 게 아닌데...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결국 파이는 실내복 차림 그대로 바깥에 나왔다. 슈에의 말처럼 추운 밤바람이 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뛰어서 땀을 좀 흘리고 나면 추운 건 금방 잊어버릴 테니까.

 

추운 밤에, 숲 사이를 뛰어다니며 파이는 슈에가 자신에게 늘상 해주었던 따스한 말들을 떠올렸다.

 

-난 언니가 좋아.

-언니도 금방 나만큼 키가 클 거야...!

-언니는 나보다 훨씬 노력하니까 분명 나를 뛰어넘을 거야.

-언니, 언니는 나보다 훨씬 더...

 

그 때 생각해보면 슈에의 그런 말들은 전혀 위로가 아니었다. 아니, 겉으로는 위로라고 받아들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슈에의 그런 따뜻한 격려가 가식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슈에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파이처럼, 거짓이 없고 올곧은 사람. 자매이기에, 쌍둥이기에 슈에도 파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마음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려야 했었다.

 

그렇게 조금씩 어긋났을 때부터, 이 자매의 앞날은 이미 예견된 건지도 모른다.

 

 

 

 

 

이봐...”

“...”

이봐, 일어나!”

“...볼프강 슈나이더 선배?”

 

잠시 꿈결을 거닐고 있었는데, 거칠게 흔드는 손길에 흩어져버렸다. 자신을 거세게 깨운 사람이 누군지 쳐다보니, 볼프강이었다. 볼프강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자고 있는 파이를 내려다보았다.

 

너 이런데서 왜 자고 있어?! 감기라도 걸리고 싶어서 그런 거야?”

“...깜빡 잠이 들어버린 거 같습니다.”

아주 대단한 재주구만.”

 

비아냥거리는 볼프강의 말투에도 파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파이를 보며 볼프강은 턱으로 휠 오브 포츈을 가리켰다.

 

그렇게 정 피곤하다면 빨리 들어가서 자라고.”

하지만...아직 정찰 임무를 마저 끝내지 못했습니다.”

내가 네 몫까지 대신 해줄 테니 빨리 들어가! 나중에 정말로 쓰러지지나 말고.”

 

뭐라고 투덜거리는 볼프강을 파이는 빤히 쳐다보았다. 볼프강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금세 파이의 눈짓을 알고 이상하냐는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뭐야? 사람을 왜 그리 빤히 쳐다보고.”

“...선배는 가끔씩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가 좋을 대로 생각해. 거기에 관해선 토 하나 달지 않을 테니.”

 

어서 들어가 자기나 해. 그게 지금의 날 도와주는 거니까. 볼프강이 저만치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서야 파이는 그제야 휠 오브 포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 게으름뱅이 선배가 임무를 잘 수행하는지 보고 나서 말이다.

 

 

 

 

 

최근 타인에게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그런지 요즘 따라 과거의 일을 자주 보곤 한다. 꿈속에서든, 가만히 앉아있는 자투리 휴식 시간에서든.

 

파이가 위상력에 각성한 건 12살쯤이었다. 파이 스스로가 자각 하지는 못했다. 최초의 발견인은 슈에였다. 수공예품을 만드는 재료인 갈대를 꺾을 때 말이다.

 

-슈에, 나 다 했어. 이제 돌아가자.

-, 언니? 나 아직 다 못했는데...최근 언니는 진짜 빠르네!

 

처음에는 파이는 천재인 슈에보다 잘 하는 것이 하나쯤은 생겨서 뿌듯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손이 빠르다는 것과는 별개의 결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슈에의 운동 신경을 웃도는 일이 일어나자, 할머님은 범상치 않는 일이라며 외부인을 초청해 파이에게 검진을 받게 했다.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위상력이라는구나.

-위상력이요...?

-나도 처음 보는 구나. 소수의 인간만이 각성한다는, 일종의 초능력이라는 구나.

 

할머님의 설명을 듣자, 파이의 가슴이 급하게 뛰었다. 쌍둥이기에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서 슈에도 같이 검진을 받았지만 위상력에 각성을 한 건 파이뿐이라고 했다.

 

슈에는 평범한 인간의 몸. 하지만 파이는 위상력을 쓸 수 있는 위상능력자의 몸!

 

그 날 너무 기뻤던 파이는, 왠지 언짢아하는 할머님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위상력에 각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파이는 슈에와 비슷한 계단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파이의 빨라진 움직임, 강인해진 근력 등을 보게 된 마을 사람들도 아예 재능이 없던파이에 대한 구설수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대신 다른 이야기가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어째서 언니만 위상력에 각성한 걸까?

-어쩌면 조만간 동생도 각성할지도 몰라!

-맞아, 위상력은 15세 전후로 각성한다고 하던데...

-그렇게 된다면 또, 동생이 추월하겠네.

 

이제 사람들은 슈에가 언제위상력에 각성하는지에 대한 입담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파이가 슈에와 비슷해진다거나 더 우위에 선다거나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꼭 슈에가 위상력에 각성하여 파이를 다시 이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슈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자신이 좋아하는 언니와 같이 동등하게 수련도 할 수 있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파이도 똑같았다. 그러나 언제나 마을 사람들 등 주변 평가에 민감한 건 파이 쪽이었다. 결국엔 이런 소리까지 들었다.

 

-왜 위상력은 저런 재능 없는 언니를 택한 걸까? 여러모로 보나 동생이 참 제격인데...

 

그 말, 잘못 들은 거라 믿고 싶었다. 파이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위상력이라는 특수한 것에 힘을 빌어서야 겨우 동등해지는 척 하는 자신의 재능 없는 몸이 한탄스러웠다.

 

슈에는 결국 위상력에 각성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희귀한 검의 주인이 되었다. 그 검을 들고 슈에는, 파이와 계승자 최종전을 치렀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슈에의 승이었다.

 

그 결과가 나오고서야, 할머님을 비롯한 촌장, 마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망가질 때로 망가진 파이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항상 빛만 나던 천재의 곁에 가서 축하와 축복을 내려주었다.

 

사람들에게 둘려진 슈에가 겨우 빠져나와 파이에게 온 것은 자정이 지난 새벽이었다. 어스름한 빛 사이로 보인 슈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슈에는 언제나처럼 파이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언니, 있잖아, 언니도 참 열심...!

-열심히 하면 뭐해. 결과가 중요하지.

-언니...?

 

평소랑 다른 싸늘한 표정의 파이로 인해 슈에는 눈이 동그래졌다. 이렇게 단호하고, 상처를 받은 언니의 모습을 슈에는 보지 못했다.

 

파이는 파이 나름대로 축하를 해주었다.

 

-축하해, 일족의 천재. 난 아무리 해도 널 영원히 못 따라갈 거야.

-...?

-따라 오지 마. 난 수련하러 가야하니까.

 

이젠 수련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의미를 모르겠지만...또 제 곁에서 가버리려고 하는 파이를 슈에는 꼭 붙잡았다. 손아귀의 힘이 억세서 위상능력자인 파이도 살짝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파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따라 오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야, 따라갈 거야.

 

그 다음 말에는 파이는 살짝 의지를 담아 소리쳤다.

 

-이거 놔, 슈에!

 

그러자 슈에도 만만치 않게 제 언니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노기(怒氣)를 표출했다.

 

-언니는 언제나 이렇게 피하려고만 해. 내 마음도 모르고!

-...

-언니는...언니는! 언니는 나보다 훨씬 더...!

 

아마도 그 날 자매는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그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인간은, 안 좋은 기억을 빨리 잊으려고 하니까. 근데 참 신기하다.

 

그 싸움은 기억이 희미하면서, 어째서 그 직후 일어난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왜 이렇게 또렷한지.

 

 

 

 

 

저희 일족은 바깥 세상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동생이 발견한 검이 차원종의 무기인 걸 어쩌면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죠.”

그렇군요.”

하지만 정기적으로 하는 제 검진을 위해 찾아오는 유니온 관계자에 의해, 그 무기에 대한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체라고 해도 그게 제1위상력 관련 무기라는 것만 아는 수준이다. 이 검은 마치 의지를 가지고 있듯이 냉기를 뿜어낸다는 것도 파이가 검을 쓰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검에 대한 정보는 빙산의 일각 수준이다. 그런 걸로 슈에를 구해낼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꽉 쥐는 검의 한기에 파이가 중얼거렸다.

 

검이, 너무나도 차가워요.”

 

항상 차가웠는데, 요즘 들어 더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파이의 뒷말에 도윤은 그제야 궁금한 게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손님의 동생 분께서는 일반인이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그 검은 비위상능력자가 써도 된다는 소리군요.”

검에게 선택을 받는다는 가정을 하면 그렇습니다.”

 

그에 대한 아주 좋은 본보기가 슈에였다. 실제로 슈에는 검을, 파이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파이보다 훨씬 더 잘 다루었다. 검을 쓸 때마다 슈에의 손길이 느껴지는 적도 적지 않았다. 그 손길의 흔적으로 인해 파이는 슈에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계속 그 검을 통해 베어나갈 수 있었다.

 

도윤이 말했다.

 

일반인도 사용한 검이라면...그렇다는 건 그 검을 노리던 자가 많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요.”

동생이 그렇게 된 이후, 알게 되었습니다. 슈에의 재능을 탐낸 건 저 뿐만이 아니었더군요.”

 

그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았다. 그렇게 슈에에 대한 감정이 더 증폭된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도윤이 물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검이 도난당한 일도 있었다는 뜻인가요?”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범인들을 금방 잡았습니다. 그 이유가 이 검이...”

, 거기서 뭐하냐.”

 

한창 중요한 하이라이트 부분인데 볼프강은 그걸 아주 멋지게 끊고 불쑥 들어왔다. 한숨 좀 자라고 했던 후배가 지금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나 나누고 있다는 것이 언짢은 것도 같았다. 파이는 볼프강에 비해 태연했다.

 

볼프강 선배. 정찰 잘 다녀오셨나요?”

그런 건 진즉에 끝냈지. 이제 갱도 안으로 들어갈 거야. ...잠은 잘 잔거야?”

, 아주 푹 잤습니다.”

 

쌩쌩한 파이의 얼굴을 보고 볼프강은 그런 거 같네, 라고 말했다. 볼프강은 기지개를 일부러 요란하게 피며 생색을 냈다.

 

게으른 후배 때문에 일 많이 했던 선배를 대신해서, 이젠 후배가 나가야하지 않겠어?”

선배 참 뻔뻔스럽습니다...”

됐고, 교대다. 난 들어가서 좀 잘련다.”

어쩔 수 없군요. 제 몫의 정찰도 돌아주신 것이 있으니, 이번 한 번뿐입니다.”

 

파이는 한숨을 쉬었다. 숙면실로 가는 볼프강을 보며 파이는 도윤에게 양해를 구했다.

 

김도윤 대협, 죄송합니다. 아마도 그 뒷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어야할 거 같습니다.”

괜찮아요. 그럼 임무 조심히 다녀오세요, 손님. , 바깥은 아직도 추우니 몸 따뜻하게 하고 가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

 

그 때의 슈에도, 그렇게 말했었지...이젠 닿을 듯 말 듯 한 옛날 일일 뿐이야...

 

 

 

 

 

재능 있는 자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파이는 그 감정을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괴로워했다. 괴로움은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죄책감을 늘 가지면서 사는 삶이 어떠냐면, 아가미도 없는 생물이 심해에서 어찌저찌 호흡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과 같았다. 숨이 머질 거 같아서 제 몸에 있는 산소를 최대한 아끼려고 스스로 목을 조르는 꼴이다. 목을 조르나 안 조르나 어차피 죽게 되는 건 똑같았다.

 

죄책감이란 쇠사슬은 다른 이가 당사자를 향해 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슬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매듭을 잡은 건 항상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자. 손을 놓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렵고 갈등이 되지만, 한 번 놓게 되면 그 후의 마음은 가벼워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중간에 손을 아예 놓아버리거나 살짝 풀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살기 어려워지니까. 일단 자기 자신부터 살아야했으니까.

 

파이는 대견하게도 제 목을 향해 항상 겨누고 있는 쇠사슬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쓰는 편이었다. 오히려 더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잡아당겼지, 느슨하게 그 끈을 놓은 적은 없었다.

 

슈에의 깊은 마음을 내다보지 않으려했던 것. 얼마 전엔 그런 이름의 죄목이 하나가 더 늘었다.

 

슈에는 재능이 있는 자였다. 재능이 넘치다 못해 이제는 슈에의 일부분까지 되어버린 그 재능을 파이만 부러워하지 않았다. 파이와 슈에 자매와 같이 춤을 배우는 동세대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춤을 추는 슈에를 부러워했다. 감정이란 참 오묘해서 조금만 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게 변한다. 전자로 변하는 건 극히 일부분, 대부분은 후자처럼 변질된다.

 

슈에 앞에서 웃던 자들이, 뒤에서는 슈에를 향한 푸념을 내놓기 일쑤였다. 파이만큼의 악담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그 무리 중에 그나마 양심이 있던 자는 슈에의 자매 앞에서 그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용서는 아니고 이실직고. 파이는 그 때 참 복잡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파이를 자신들의 무리에 넣지 않으려고 했기에, 파이는 이 사실을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심지어 슈에가 검을 얻은 직후에는 그 검마저 뺏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검은 기특하게도 자신의 주인을 잘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이 아닌 자가 만지면 검은 즉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뺏으려는 자의 몸을 얼어붙게 했다. 이 세계에서 마주할 수 없는 냉기를 접한 사람은 다시는 그 검에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검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지켰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오직 주인을 위해 기꺼이 사용했다. 그 덕분인지 그 검과 추는 슈에의 춤은 나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졌다. 원래도 아름다웠던 슈에는 이제는 정말로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어. 내딛을 수가 없어. 네 빛에 내가 가려지니까.’

 

파이는 그런 생각을 매일 했었다. 그러다가 이내 체념도 한다.

 

, 원래부터 그림자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

그래도 그림자도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닐 텐데.’

애초에 난 슈에의 그림자도 아니지 않을까. 그림자라면 똑같이 따라해야하는데, 난 슈에를 전혀 따라갈 수가 없어...’

 

무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꿈틀- 거렸다. 그것은 태연히 파이에게 인사까지 건넸다. 친근하게 대화를 붙이는 그 목소리를 외면했으면 좋았을 텐데...

 

딱 한 번이야.’

 

딱 한 번만 빌리는 거야...

 

아니, 빌리는 것도 아니야. 만져보기만 하는 거야.’

 

뺏을 것도 아니야. 그냥, 순전한 호기심일 뿐이야. 이 검을 쥐었을 때의 감각이 궁금한 것뿐이야...

 

슈에가 먼저 깊이 잠이 든 어느 새벽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슈에는 저를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슈에를 부러워하듯이.”

 

이 미숙한 언니에게 부러워할 것이 뭐가 있었는지...파이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그 때의 슈에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쌍둥이 동생은 호기심이 참 많았다. 특히 산 너머에 있다는 것들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항상 높은 동산 위로 올라가 등고선 너머를 보며 슈에는 파이에게 말했다.

 

-언니,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산이 또 있지 않을까?

-그 산 너머에는 또 뭐가 있을까?

-또 산이 있지 않을까? 절벽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항상 자신이 봐온 풍경이 산맥밖에 없어서 파이는 이런 식의 대답만 했다. 사실 파이는 슈에보다는 그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파이는 지금 이곳에서 지내는 것 이외의 것을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슈에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세상 바깥에 있는 것은 자신이라니. 헛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슈에가 지금 이 앞에 있다면 파이는 말해주고 싶었다. 슈에, 늘 궁금하던 바깥세상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산 너머에는 산이 이어져있는 게 아니었어.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바다는 호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야. 그 바닷가에서 맞는 바람은 호수에서의 바람과 달리 눅눅하고 짭조름한 내가 나더구나...

 

그러고 보니 이렇게 내가 직접 밖으로 나오게 된 것도 슈에, 널 위해서였구나.

 

잡고 있는 검에서 한기가 살짝 느껴진다.

 

슈에의 진심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건 슈에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을 때, 자신의 진심을 말했던 때였다. 파이 또한 자신의 감정이 주체가 안 되어서 볼멘소리가 나가버린 그 때였다.

 

슈에가 진심을 담아 솔직히 말했다.

 

-언니는...! 언니는 나보다 훨씬 더...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잖아...!

-난 그게 일족의 춤이라고! 너도 날 이해하지 못한 거잖아! 하려는 척 하는 거잖아!

 

그 당시의 슈에의 말은 파이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한 게 파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일족의 기술을 계승하기 위한 수련을 받았다. 그러니 당연히 해야 하는 것도 그것, 하고 싶었던 것도 그것.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것을 척척 잘 해내는 슈에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참 이해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슈에의 저 진심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파이가 위상력에 각성하기 전의 일이었다.

 

-언니, 우리 언제 한 번 여행을 떠나보자.

-여행?

-. 행선지는 안 정해도 돼. 언니나 나나 둘 중 한 명이 계승자가 되어버리면, 둘이서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이 없잖아.

 

일족의 계승자가 되는 건 분명 슈에일 텐데, 슈에는 어렸을 때부터 참 착했다. 파이는 아무 말을 안 했지만 슈에는 계속 쫑알거렸다.

 

-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는 바다는 어떤지 가늠이 가지 않아. 정말 호수보다 클까?

-글쎄...

-난 그걸 언니랑 같이 보고 싶어!

 

슈에는 정말로, 파이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파이도 그 마음만큼 슈에를 좋아했기에 꼭 언젠가는 여행을 가자고 약속도 했다.

 

어쨌든 자매의 첫 싸움이 있던 날, 슈에는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난 언니가 너무 나에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슈에...

-언니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찾아. 그리고 그걸 하면서 살아. 나와 같이 갇혀있지 말고. 이게 내 오랜 소망이야.

 

슈에의 눈동자는 촉촉했다.

 

이토록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다니. 그리고 자신은 얼마 가지 않은 커다란 실책을 해버리고 만다. 그림자처럼, 대용으로라도 사는 것에 만족했으나, 자신은 슈에가 아니라는 사실에 참 좌절했었다. 그 후에 슈에를 구하기 위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바깥으로 직접걸어 나가고, 많은 이들과 만남으로써 하나씩 배워간다. 슈에는 어쩌면 이걸 원했을지도 모른다. 주워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닌, 직접, 스스로.

 

여전히 슈에의 눈동자색이 고요히 스며든 붉은빛의 눈을 볼 때마다 말수는 급격히 적어진다. 그래도 최근에는 그 눈동자를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파이는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슈에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파이는 파이 혼자서, 이 멋진 세계를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슈에도 같이 옆에 있어주길 원했다.

 

한발자국씩 나아가면서도 과거를 붙잡고 있다. 그러나 붙잡고 있는 옛것으로 인해 오히려 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옛날이야기는 여기서 끝, 이라며 마무리 지어지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파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흰 눈이 지금도 내리고 있군요...”

지금은 한창 겨울이니까요.”

저희 자매도...같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빛났던 거 같습니다.”

 

흰색과 눈.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의 뜻을 가진 단어가 된다. 홀로 있을 때에야 흰색은 두드러지긴 하나, 파이는 그래도 역시 슈에가 옆에 있어주면 했다.

 

()색이 아닌 눈()이라니...전혀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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